난 돈이 아니라 자유를 모은다

이렇게까지 아끼며 살아야 하나 싶을 때

by 신거니

고민이다. 이거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망설인다. 아예 넘보지도 못할 물건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반드시 사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뭔가 필요한 듯하면서도, 어쨌든 살 수 있으면서, 그러면서도 왜 필요한지는 명확하게 답하지 못할 때 답답하다. 사도 후회, 안 사도 후회 할바엔 사는 게 나으려나? 아니면 돈을 아끼는 게 나으려나?


돈을 얼마까지만 써야 한다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내가 스스로 돈을 벌어먹고 살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에 신용카드까지 가세하면 더 골치 아프다. 얼마 정도는 할부로 넘기고, 한도를 아슬아슬하게 채워 소비하다 보면 내 월급의 몇 배를 쓸 수도 있다. (여기에 지출액이 늘어나면 카드 한도도 올라간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지속 가능하다면 말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무조건 아끼기만 하면 어떨까? 월급의 대부분을 적금 계좌로 보내버리고 남는 돈으로 어떻게든 살아남는 식이다. 그렇게 살 수도 있다. 명확한 목표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절약을 위한 절약은 사람을 괴롭게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 오히려 소비욕구가 폭발할 수 있다. 코로나로 억눌린 소비 심리가 보복 소비라는 다른 형태로 분출되듯이.


'돈을 어떻게 아껴야 하지?'라는 고민 이전에 '돈을 왜 아껴야 하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돈을 다루는 방법론도 중요하다. 다만 명확한 이유가 없다면 마음이 괴롭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괴로움을 견뎌내야 할까? 인생은 한 번뿐인데 좀 즐겨야 하지 않을까?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몇억이라는데 내가 아무리 아껴봐야 소용도 없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돈을 모으는 건 고행이자 고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난 돈이 아니라 자유를 모으는 거라고. 돈을 위해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자유롭기 위해서라고. 돈은 실질적인 형태로서 존재한다. 지갑에 들어있는 지폐이든 통장에 찍힌 숫자든 간에. 그런데 돈에 대한 관념은 한없이 추상적으로 피어난다. 그냥 숫자 장난으로 보인다.


소비라는 건 그런 추상적인 관념을 현실로 끌고 오는 작업이다. 내가 숫자 얼마를 저쪽으로 보내면 옷이나 음식,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온다. 카드보다 현금으로 결재할 때 소비가 억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절약이나 재테크도 그렇게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로 바꿀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손으로 만질 수 있다는 건 내 일상에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통장에 찍힌 숫자 자체는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숫자가 다른 가치로 모습을 바꾸어 삶과 엮일 때 돈의 진가가 발휘된다. 나에겐 그게 자유다.


지금 이 물건을 사면 단순히 돈만 쓰는 게 아니다. 지금의 100원이 미래에는 얼마가 된다는 식의 경제논리는 잊자. 미래에 쓸 나의 자유를 담보삼아 현재 소비를 하는 것이고, 경제적 자유는 조금 더 멀어진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어느 쪽이 꼭 정답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자유를 모으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집었던 상품을 조용히 내려놨을 뿐이다.


돈을 모으는 자체로 흐뭇한 사람이 있겠지만 나에겐 충분하지 않았다. 그 과정은 분명 번거롭고 불편했으니까. 그런데 자유를 모은다는 생각을 하니 한결 편해졌다. 지금의 소비가 내 자유를 희생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금액이 아니라 가치를 고려한다. 금액은 판매업자가 매기지만 가치는 내가 책정한다. 가치를 기준으로 소비를 바라보면 돈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세일을 하든 한정품이라고 광고를 하든 상관없다. 자유는 주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난 그걸 포기할 생각이 없다.






난 항상 자유를 원했다.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 보고 싶은 사람만 볼 수 있는 자유, 살 수 있는걸 마음껏 살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 모든 자유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돈이 없어도 자유로울 수 있다. 대신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고 끊임없는 압박에 시달린다. 반대로 돈에 얽매인 노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돈을 아끼고, 투자를 시작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지금의 회사도 돈을 모으기 위해 얼마간 일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경제적 자유는 많은 돈이 아니라 균형에서 온다. 수입과 지출, 저축과 소비 사이의 균형.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돈을 벌고, 그보다 적게 소비하는 것. 이게 내가 정의한 경제적 자유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들을 일도 없다. 사람에게 매이지 않으니 시간도 내 것이 된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 삶의 의미도 행복도 자연스레 찾아온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혹자는 소위 FIRE족을 지향한다. 극도로 돈을 아끼고 모아서 젊은 나이에 은퇴하려는 움직임이다. 다만 그 과정이 혹독한 데다 이후의 기나긴 삶을 보낼 동력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사람은 일하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난 돈을 아무리 많이 벌더라도 여전히 일할 거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