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든 건 끝난다
직장인은 가슴속에 사직서 한 장씩을 품고 산다고 했던가. 누구나 퇴사를 꿈꾼다. 실행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내가 원하지 않아도 회사가 그 꿈을 이뤄준다.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회사는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 그 밖으로 던져질 날이 온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별을 준비하는 건 어떨까? 당장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없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아무도 배낭을 대신 꾸려주지 않는다. 언젠가 떠날 나만의 여행길이다. 내 배낭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월세를 따박따박 받을 수 있는 건물이나 막대한 유산이라면 다행이다. 대개는 카드빚과 작고 귀여운 통장잔고, 퇴사하고 뭐할지 모르겠어하는 불안감 한 스푼이 전부다. 준비를 하라는데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 사실 나도 그렇다.
누군가 회사를 나와 성공했다는 미담을 늘어놓아도, 절대 나오지 말라며 겁을 줘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다. 내 목표를 이루지 못할까봐, 이게 잘못된 선택일까봐. 정해진 미래조차 불안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한없이 작아지는 나. 어르고 달래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애매한 행복과 확실한 불행.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사람은 의외로 후자를 선택한다. 불확실성이 주는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는 이집트 왕국 치하에서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다. 그리고 이들을 이끌고 광야로 나간다. 하지만 군중의 반응은 달갑지 않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 땅으로 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다. 예전의 노예 시절이 더 나았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지금의 회사는 나에게 확실한 불행이다. 물론 고통스러운 시간만 있는 건 아니다. 어디에나 소소한 행복은 있다. 등에 채찍을 맞아가며 강제노역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조차 그 한 줌의 추억을 떠올렸다. 광야는 거칠다. 눈을 부라리는 감독관은 없지만 제대로 된 잠자리조차 없다. 차라리 선지자의 뒤를 따르는 백성이라면 낫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가면 되니까. 모세에게도 길을 일러주는 신이 있었다.
회사 밖은 광야다. 그 공간에 발을 들이려면 용기와 확신, 그리고 약간의 무모함이 필요하다. 내가 나 자신의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그런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한다. 용기는 겁쟁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매사에 대범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일에 무모하게 덤벼들다간 살아남지 못한다. 우린 호랑이만 보면 달려들던 사냥꾼이 아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나무 위로 피신하던 겁쟁이의 후손이다. 퇴사는 분명 겁나는 일이다. 하지만 회사에 계속 남아있는 내 모습이 더 두렵다.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아프다. 용기를 내본다. 그 용기란 공포심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을 겁내야 할까? 바로 필연성이다. 결국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 이보다 더 무서운 건 없다. 내 인생도 회사도, 어쩌면 이 우주 전체도 언젠가 끝이다. 끝은 과정을 묻는다. 너 그동안 뭐했어? 이렇게. 그 앞에선 누구나 바들바들 떤다.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서. 그런 추궁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서 서툴게나마 내 발로 걸어보련다. 광야는 거칠지만 자유롭다. 별 아래서 오롯이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조직에 눌려 있는지도 몰랐는데. 내 목소리는 이랬구나, 바깥의 바람이란 이런 거구나, 하나둘씩 자각한다. 감각이 깨어나면 길이 보인다. 누군가 아스팔트까지 부어가며 만든 길이 아니라 바위틈을 따라 난 샛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모든 건 끝난다. 그 사실이 묘하게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