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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난 할 말이 없는데

누구에게나 스토리가 있다는 말의 진짜 의미

by 신거니

콘텐츠를 만들고 나아가 브랜딩을 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와 각종 플랫폼의 발달로 개인이 하나의 브랜드가 되기에는 최적의 시기다. 하지만 시작하는 단계에서 매번 막히고 만다. '전 워낙 평범해서 들려줄 이야기가 없는데요?' 보통 이런 반응이다.


우선 여기서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게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보자. 그건 말 그대로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는 오를 수 없는, 일상적인 일상과 구태의연함으로 무장한 상태를 말한다. 길게 보면 전형적인 한국식 인생 과정을 밟아왔고, 매일매일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누구나 겪어내는 삶이랄까. 내가 만약 이런 삶을 살고 있다면, 혹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면 이 평범한 일상으로 콘텐츠를 만든다는 생각은 못하는 게 자연스럽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특별한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같이 그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세계여행을 하거나 자기 손으로 기업이라도 하나 일구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맞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건 대부분 반복적인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삶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 그걸 뚫고 새로움을 만들어내려면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가 든다. 아무리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도 매일같이 보다가는 지갑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럼 대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이 시점에 사람에게는 누구나 고유한 스토리가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아무리 비슷비슷해 보이는 일상이라지만 분명히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문제는 그 고유함이 특별하지도, 유용하지도 않을 때 나온다. 지극히 평범한 내가 아침엔 토스트를 먹고, 점심엔 카레를 먹고, 저녁엔 매운탕을 먹는다. 나 자신에겐 고유한 식단의 조합일 수 있다. 그래서 그 과정을 브이로그로 찍어서 올린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특별히' 예쁘거나, 잘생기거나,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한다면 모르겠다.


나의 일상을 지인과 공유하며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관계'라는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너와 나는 이미 아는 사이기 때문에 일상 만으로도 대화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타깃으로 하는 대상은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남이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 주목하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특별해서 눈길이 가거나, 아니면 내게 필요한 사람이거나. 여기서의 필요는 사적인 관계일 수도 있고, 비즈니스 관계일 수도 있고, 하다못해 화장품 샘플을 주고받는 관계일 수도 있다. 관계란 필요에 의해 생기고 또 유지된다.


콘텐츠 자체가 상향 평준화된 요즘에는 더더욱 나의 스토리로 주목을 끌기가 어려워졌다. 애초에 뭔가를 만들기도 어렵다. 세계여행도 식상한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내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특별함으로 차별화를 하기 어렵다면 이번엔 유용함을 주목할 차례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용함이란 특별함과는 달리 오히려 평범함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만약 내가 여름을 맞아 '모기를 퇴치하는 법'을 검색했다고 치자. 그중엔 분명 특별한 녀석이 있다.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모기를 때려잡는다. 살충제 기관총을 난사한다든지.... 특별하긴 하다. 근데 유용하진 않다. 당장 내가 써먹을 수도 없거니와 번거롭다. 그보다는 차라리 평범하게 생긴 누군가가 조곤조곤 말해주는 노하우가 훨씬 낫다.


공감 측면에서도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이 낫다. 이 글에서 말하는 유용함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어떠한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게 곧 유용함이다. 만약 내가 개인적인 위로나 공감을 받고 싶다면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보다는 옆집 언니 오빠에게 도움을 받을 확률이 더 크다.


특별함도 좋지만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차라리 어떻게 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낫다. 사실 세계 유수의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는 실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아무리 특별하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계속 끌어가긴 어렵다. 특별함은 금방 식상해진다. 전구를 처음 발명했을 때는 그 자체가 엄청났지만 지금은 누구나 누릴 수 있게 된 것처럼.


유용함은 지속된다. 수많은 먹거리 유행이 명멸하는 가운데 길거리 떡볶이나 붕어빵이 계속 살아남는 이유는 유용함 때문이다. 유용함이 지속되면 이는 맥락이 되고 관계가 된다. 사실 특별함을 위한 특별함보다는 이쪽이 브랜딩,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가깝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브랜딩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 나를 판다. 둘, 메시지를 판다. 즉 나라는 사람의 매력으로 승부하거나, '나' 외부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 각각의 경우에 스토리텔링은 다른 형태를 띄어야 한다.


'나'를 내세울 것인가, 아니면 '나 이외의 무언가'를 내세울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 브이로그'가 인기를 끌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나를 제대로 내세우지도, 다른 메시지를 내세우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포지션에 있다. 한두 번은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어떤 대상을 포지셔닝할지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소리다.


만약 내가 외모에 자신이 있고 누군가를 매료시킬 힘이 있다면 '나'라는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내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보여줄 대상은 있다. 브이로그에 내 인사이트를 녹여내거나, 예쁘게 꾸민 방 인테리어를 보여주거나, 정갈하게 다도를 하는 모습을 찍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나라는 사람은 뒤로 빠지고 다른 요소가 앞으로 나온다.


다른 사람은 대개 '나'에겐 관심이 없다. 유용한 무언가를 계속 던져주면 조금씩 관심을 가진다. 그러다가 그 관심이 '나'에게로 옮겨간다. 통상적인 브랜딩은 이렇게 진행된다. 스토리텔링은 그 과정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 브런치에서 퇴사와 독립,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소수다. (오늘자로 구독자가 200명이 되었다)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더 소수다. 하지만 착실하게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다. 나라는 브랜드가. 결국은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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