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과 자기 방어는 이제 멈추고 싶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주말 저녁, 유튜브 영상 편집 하나를 끝냈다. 따지고 보면 일의 영역이다. 영상 편집은 사실 취미의 영역은 아니다.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한다. 일이니까. 그리고 바로 브런치를 켜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오전에는 인스타그램 포스팅도 마쳤다. 평일에는 회사도 나간다. 이렇게만 보면 일과 삶의 경계가 한없이 무너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 회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당시 일이란 회사 정문을 나서는 순간, 더 정확히는 컴퓨터 전원을 끄는 순간 떨쳐내야 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퇴근 시간 전후로 주어지는 일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근로계약서에 깨알같이 적힌 '근무 시간'을 따지게 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물론 초과근로수당 정도는 챙겨주는 회사였지만 돈을 떠나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칼퇴근이란 찌들어 사는 직장인으로서 최후의 보루였다.
반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일부러 찾아서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고 불안하다. 뭐라도 잡고 시작을 해야 한다. 회사를 나가 일을 하는 것도, 브런치 포스팅을 하는 것도, 인스타그램 피드를 올리는 것도,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고 기획하는 것도, 개인 출판 작업을 하는 것도, 하다못해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것도 내겐 '일'의 연장선에 있다.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 퇴근만 기다리는 일은 없다.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물론 매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진 않다. 영상 편집에는 취미가 없는지라 기계적으로 할 때도 많다. 회사에서도 어려움이 있고, 브런치 포스팅 소재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그래도 좋다. 모든 시간이 나를 위해 적립되고 있으니까. 조직의 배를 불려주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충만함과 독립을 위해 일하고 있으니까.
일에 대한 보상을 온전히 누릴 것. 그게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내겐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유다. 누가 시켜서, 다른 사람 배를 불려주려고 하는 일은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결 하나하나가 나를 향해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이제는 밤에 일해도, 주말이나 공휴일에 일해도 억울하지 않다. 삶과 일의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물론 힘들면 잠깐 쉬기도 하고 아예 빈둥거리며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기도 한다. 휴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또 나를 한껏 채워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다만 언제든 다시 돌아가 전념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마음의 짐이 아니라 오히려 반가운 고향처럼 다가온다. 힘들긴 하지만 괴롭지는 않다.
또 게으름에 대해 자기변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회사에서 잔뜩 남의 일을 하고 돌아오면 보상심리가 발동한다. 그래서 한껏 인생을 방임하면서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 고생했으니까, 내 시간도 보내야 하니까 이런 이유를 대면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내일은 회사를 가야 하니까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잠에 빠진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의미한 시간이 쌓여간다. 어떻게든 새는 시간을 막아보려 애를 쓰다 결국 몸이 망가지고 말았다.
모두가 워커홀릭이 될 필요는 없다. 나도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일과 쉼에 있어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또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온전히 내가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책임을 회피하고 겉에서만 돌다 보면 언젠가 삶에 크게 얻어맞는 날이 온다. 일에 '치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맞는 일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하루를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