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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가 온다는데 난 어쩌지?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자

by 신거니

영화 <빅 쇼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주택시장의 안정성을 과신했던 은행은 부실채권을 한데 묶어 개인에게 마구 발행했고 엄청난 수수료를 챙겼다. 그 와중에 주택시장의 붕괴를 예견한 마이클 버리는 해당 채권의 하락에 베팅하는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 수많은 월가의 은행과 거래한다. 부동산이 망할리는 없다고 생각한 은행들은 공짜 돈이 생겼다며 축배를 든다.


시장의 상승에 베팅하면 롱(Long), 하락에 베팅하면 숏(Short)이라고 부르는데 그는 미국 경제의 파탄에 베팅했으니 빅 숏(Big Short)에 모든 걸 건 셈이다. 결과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며 월가의 은행은 줄줄이 망했고, 마이클 버리는 천문학적인 돈을 챙긴다. 그리고 당시 미 정부는 구제금융을 실시해 은행을 지원했고,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발생했다.


해당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한국도 큰 피해를 입었다. 경제성장률은 곧바로 추락했고, 반면 물가는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경제란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 되었다. 이는 마치 인터넷망을 통해 모든 나라가 연결된 모습과도 같다.


미국 연준에서 금리를 올리면 왜 내가 갚아야 할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상승할까? 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났는데 뜬금없이 밥상머리 물가가 상승할까? 코로나19 사태 이후 이런 요인들의 연결성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다. 새삼 글로벌 시대가 되었구나 싶으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최근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적 위기는 어떻게 찾아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1. '그 질병'이 찾아왔다.


전 세계가 미중 무역분쟁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2019년 말,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신종 전염병이 보고되었다. 이미 메르스나 사스, 신종플루 같은 감염병을 겪어낸지라 이번에도 국소적으로 영향을 미치다 끝날 줄 알았다. 그 뒤로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코로나19 사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정말 모든 게 변했다.


우선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해 실물 경기가 위축되었다. 각종 거리두기 및 봉쇄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았다. 당시 난 유통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들어오던 수입상품이 몇 주씩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아예 공장 가동을 멈춘 탓이다. 물류를 담당하는 항구도 제대로 운영이 안되었고 공항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국내 상품도 중국 공장에서 OEM 방식으로 생산되는 경우가 많아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각국 정부는 금리를 내리고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침체된 경기를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안 그래도 낮았던 금리는 이제 거의 0으로 수렴했고, 독일 등 유럽에서는 아예 마이너스 금리까지 등장했다. 특히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달러를 무한정하게 찍어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동시에 효력을 발휘했다.


Snp 지수.JPG


결과는 엄청났다. 코로나19 사태로 반토막이 난 주식시장은 빠른 속도로 반등했고 전고점을 넘어 끝없이 올라갔다. 특히 기술주의 성장이 눈부셨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접촉이 어려워지자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던 IT 업계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더구나 저금리 정책으로 돈을 쉽게 빌려올 수 있으니 자금을 대기에도 좋은 상황이다. 구글 등 소위 빅 테크 기업이 나스닥과 S&P 지수 동반 상승을 이끌어냈다.



국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약 1,500 포인트까지 떨어졌던 코스피 지수는 2021년까지 빠르게 반등했다. 낮아진 금리를 이용해 '영끌'이나 '빚투'를 하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동학 개미 운동과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동반되었다. 여기에 암호화폐 가격까지 오르며 자산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그야말로 모든 게 올랐다. 이 흐름에서 소외될 수 없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겹쳐지며 모두가 미친 듯이 뭔가를 사들였다. 그렇게 모든 게 좋기만 할 줄 알았다.


2. 오른 건 주가만이 아니다.


자연스레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우선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인해 유동성이 증가했다. 한마디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다. 금리를 낮추니 대출 비율이 증가한다. 갚아야 할 이자가 줄어든다. 자산 가격이 계속 상승했으니 빚을 지고 자산을 구입하는 게 이익이라는 판단이 선다. 아예 정부에서 지원금의 형태로 돈을 뿌린다. 또 통화량이 증가한다. 화폐의 가치는 내려가고, 자산의 가치는 상승한다. 희소하면 가치가 오르고, 흔해지면 가치가 내려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쳤다. 우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물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해외여행을 못 가니 명품을 사는 보복 소비가 발생했고, 또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며 관련 물품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인테리어, 럭셔리 브랜드는 역대급 활황을 맞는다.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상승한다.


WTI 시세.JPG 원유 선물 가격의 상승. 직접적으로는 휘발유 및 경유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그 와중에 원자재 가격도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 전 세계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가 오르니 공장을 바쁘게 돌려야 해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전염병 봉쇄로 인해 많은 공장이 문을 닫은 상황이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생산을 해야 했다. 공장 노동자의 임금도 상승한다. 항구도 다시 돌려야 하고 기계도 돌려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 미국에서는 구인난이 발생한다. 정부 지원금도 넉넉하게 들어오니 굳이 저임금을 받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임금, 물류비,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며 결국 물가를 올린다.


소비자물가상승률.png


덕분에 국내 물가는 근 10년 이래 최대치(약 4%)로 올랐다. 미국의 경우에는 7~8% 물가 상승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기업은 오른 물가로 역대급 매출을 올리지만 가계는 어쩐지 더 팍팍하다. 밥상머리 물가가 이렇게나 많이 오른 걸 체감하는 게 얼마만인가 싶을 정도다. 특히 기후위기로 인해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들며 식재료 값은 계속 치솟는다.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이 발생하며 상승을 부추겼다. 전 세계에 밀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곡창지대이기 때문이다.


3. 그 와중에 금리를 올린다고?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산 주식, 내가 산 부동산 가격은 착실하게 올라주었으니까. 계속 상승하는 부채비율이 조금 신경 쓰이긴 하지만 저금리 상황에서는 큰 부담이 되질 않았다. 더구나 기업들도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한국은 수출형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과실을 한껏 누리고 있다. 이대로 모든 게 오르기만 하면 된다.



미국 금리 추이.JPG 미국의 기준 금리, 최근 0.5%까지 올랐으며 연말까지 빠른 인상을 예고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바다 건너 미국의 연준(연방준비제도)이라는 곳에서 기준금리를 올린다. 그것도 연말까지 빠른 속도로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국은 더 빠르게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신임 총재 후보자 역시 '욕을 먹더라도 금리를 빠르게 올리겠다'라고 선언했다. 미국의 금리에 비해 한국의 금리가 높지 않으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 탓이다. 실제로 한국의 기준금리는 최근 1.5%까지 상승했다.


금리 추이.JPG


생각해보자. 최근 발생한 자산 가격의 빠른 상승은 저금리 기조를 타고 발생했다. 주식도 마찬가지고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 빚을 잔뜩 내서 주택을 구입한다. 그리고 주택 가격은 계속 상승해 이런 예측을 뒷받침한다.


주택매매가 증가율.png


실제로 작년까지 주택 가격은 그야말로 미치도록 올랐다.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이겨내자마자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매매가는 계속 증가했다. 여기에 금리도 낮으니 가계부채비율은 자연스레 상승했다. 서울, 특히 강남 불패신화가 증명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최근 그 추세가 꺾인 듯 보인다. 특히 2022년 들어 월 1% 가까이 상승하던 주택 매매가는 이제 성장을 거의 멈췄다. 심지어 강북의 경우에는 올해 2월 0.1% 역신장을 하게 된다. 현재 정부가 실시하는 부동산 규제 정책의 탓도 있겠지만 금리 부담이 커지며 자연스레 투자 심리가 위축된 탓이다.



실제로 현재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는 약 6~7%까지 상승했다. 우선 기준금리가 올랐고, 담보대출의 근간이 되는 5년 은행채 금리도 빠르게 상승했다. 한마디로 은행과 정부가 뿌린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이제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도 뜸해졌고, 하다못해 코로나19 치료비도 앞으로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인의 자산 비중 중 부동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둘째,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부동산의 자산 비율이 큰 편이다. 거칠게 말하면 유럽은 연금성 자산의, 일본은 현금성 자산의, 미국은 금융상품 자산의 비중이 높다. 반면 한국은 비금융자산(부동산 등)의 비중이 크다.


한국 자산 구성표.JPG


즉 가계자산 자체는 증가했으나 이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이끌어낸 경우가 많고, 또 부동산 자산의 특성상 대부분 부채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현관에서 신발장까지만 내 집이고, 나머지는 은행 집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지 않는가. 여기에 금리가 오른다고 하니 변동금리(금리의 변동에 따라 이자가 달라지는 상품)로 빚을 낸 사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가계신용동향.png 가계 빚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이제는 이자도 오를 예정이다.


4. 모두의 현재 상황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예전 같지 않다. 그 와중에 금리가 올라 이자 부담이 커진다. 주식도, 암호화폐 시장도 횡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가는 오르고 실물경제는 여전히 회복이 더디다. 이게 모두가 마주한 상황이다. 심지어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국채를 잔뜩 발행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재정정책을 실시했으니 빚이 산더미다.


GDP대비 국가채무.png


인구성장률은 작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저출생과 노령화가 겹치며 사회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현재의 베이비 부머 세대가 노령 인구로 들어서는 시점부터 충격이 크게 다가올 예정이다. 경제성장률 전망도 좋지 않다. 대내외적인 상황이 겹치며 성장이 멈춘 탓이다.


인구성장률.png
부양인구비.png 노령층의 빠른 증가로 인구 부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예정이다.
경제성장률.png 코로나 사태의 기저효과로 인해 작년에는 4%대 성장을 했지만 앞으로는 과연?


5. 그럼 이제 어떡해?


자, 암울한 얘기를 잔뜩 들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류는 생각보다 빠르게 경기를 회복했다. 아니, 적어도 그런 줄 알았다. 유동성이라는 바닷물이 빠진 자리에는 이제 모두가 외면해온 문제들이 하나둘씩 불거질 예정이다. 자산 가격의 버블, 가계빚의 증가, 경제 성장의 둔화, 금리의 상승으로 인한 부담 증가, 인플레이션 현상, 글로벌 원자재 위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럼 개인의 입장에서 이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우선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단계에서는 돈을 아껴야 한다. 굉장히 식상하지만 사실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의 대세 상승기가 올해를 기점으로 꺾인 느낌이다. 물론 개별 자산군에서는 등락을 반복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추가 상승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자칫 돈이 묶일 수 있다. 물가 상승과 이자 상승으로 인해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니 가능한 한 신중하게 투자와 소비를 이어가야 한다. 금리가 오르니 예적금 상품도 예전보다는 매력도가 올라간다.


다만 무작정 저축만 하면 안 된다. 앞서 살펴봤듯 가계의 위기는 부동산의 위기에서 온다.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주택 시장이 붕괴하며 촉발되었다. 그렇다고 갖고 있는 집을 팔라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가능하다면 변동금리가 아닌 고정금리 상품으로 전환하고, 그게 힘들다면 원금을 포함하여 이자를 미리 갚아나가야 한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이자가 오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자산배분을 통해 손해를 줄여야 한다. 주가나 부동산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안전자산은 금 선물 가격은 계속 상승했고, 원-달러 환율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며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를 방어했다. 이익을 크게 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손해는 이익보다 심리적으로나 수학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또 금리 자체가 오르니 개별 채권이나 각종 예적금 상품을 일부 편입시키는 전략도 생각해볼 만하다. 정해진 이자를 받으며 현금 흐름도 만들 수 있고 위험자산의 하락률을 어느 정도 상쇄시킬 수도 있다.


금 선물 시세.JPG


근본적으로는 현금 흐름을 꾸준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자산에 대한 투자도 지속해야 하지만 투자를 하려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있어야 한다. 애초에 종잣돈을 만들든 추가 투자 여력을 만들든 간에. 글로벌 관점에서 위험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엄한 데 투자해서 대박을 노리자는 말이 아니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부터 차근차근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다. 그리고 이는 더 빠르게 상승할 예정이다. 부동산 가격의 상승에만 의존하지 말고 평생을 두고 수익을 발생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퇴사는 빠르게, 은퇴는 느리게' 식의 전략적 관점이 필요하다. 스스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꾸준하게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가장 필요한 건 교육이다. 기술뿐만이 아니라 마인드셋, 경제관념에 관한 교육이 절실하다. 누군가 해줄 수 없다면 내가 나 자신을 가르쳐야 한다. 결국은 공부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빚을 내어 집을 샀던 미국 국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반면 이 사태를 촉발한 은행은 두둑한 구제금융을 받고 기사회생했다. 불공평, 불공정은 인간 사회에 깔린 전제조건이다. 이를 직시하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오늘도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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