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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힙하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또 의식적으로 조금씩 뒤쳐지기

by 신거니

예로부터 힙하지도, 핫하지도 않게 살아왔다. 남들이 모르는 간판도 없는 이자카야라든지,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시크릿 루프탑 바 같은, 뭐랄까 힙스러운 정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왁자지껄하게 찾는 아주 대중적인 장소도 유행이 한참 지난뒤에야 슬쩍 들려보는, 그런 '뒤쳐진' 사람이다. 하다못해 노래도 가장 대중적인 타이틀곡만 간신히 찾아 듣는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거나 혹은 선도하는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나와 수많은 남 사이에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 그렇게 살고 있다. 오히려 이미 식어버린 유행의 잔해를 슬쩍 뒤적거리며 묘한 승리감을 맛볼 뿐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아무튼 그런 마음이 든다. 그래서 '난 힙하지 않다'는 다소 솔직한 고백을 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왜냐면 그게 사실이니까.


이런 내가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원천은 사실 내면이다. 눈앞의 세상을 곱씹고 또 곱씹고 또 곱씹어서 가루가 될 때까지 씹어댄다. 생각의 바다 밑바닥까지 기어내려가서 진흙 잔뜩 묻은 유물을 들고 유유히 올라온다. 사실 유행을 좇는 행위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그만큼 사유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어쩔티비'에서 '절래절래 전래동화'로, 또 '띠부띠부씰'로 넘어가려면 찬찬히 돌아볼 여유가 없다.


콘텐츠를 매일같이 만들어내기에 생각을 깊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쌓인 생각을 정리하려고 콘텐츠를 만든다. 누군가는 조깅을 하고나서 '아 지루해, 다음부턴 테니스나 배울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달리기를 하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같은 책을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다.) 물론 매사에 그렇게 생각이 깊었다간 현실과 유리되고 만다. 내면에 침잠하는 시간 동안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브런치의 주제를 일이나 사랑 같은 '현실적인' 소재로 잡은 건 이 때문이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을 떠나 부유하는 생각은 그저 유령에 불과하니까. 삶에 도움이 안 된다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래서 어쩌라는건지 짚어줄 수 있는, 그런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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