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두고 뭐 먹고 살려고?

알아서 하겠다는 말로는 부족하다면

by 신거니

아무리 알아서 하겠다고 해도 부모님의 마음은 편치 않나 보다. 잘 다니던 (사실 '잘' 다니는 건 아니었지만) 직장을 그만둔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음 회사는 알아보고 있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친척을 만나도 들을 이야기겠지. 사실 거짓말을 하면 속 편하다. 그냥 이직을 하겠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추가적인 질문이야 듣겠지만 적당히 대답하면 된다.


그런 쉬운 길이 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당당하지 못해서다. 어차피 내가 살 인생이다. 어떻게든 돈은 벌어먹고 살 테니 걱정 마세요. 무슨 자신감이냐고 묻는다. 사실 근거가 없다. 회사를 다니는 모습을 보며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 자체가 강력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밥벌이에는 문제가 없다는 근거,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근거, 명절만 되면 쏟아지는 친척의 질문공세를 피해 갈 근거.


그럴 때 나오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현실'이다. 자신감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해라. 돈 버는 문제는 현실이지 않느냐. 맞다. 내가 살아가는 곳은 현실이다. 현실에서 삶을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돈이 있어야 한다. 현재와 미래를 위한 돈.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회사를 나오겠다며 선언한 나. 꿈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니냐. 퇴사하고 뭐 먹고살려고 하냐.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 준비를 해야 더 잘된다더라. 사방에서 수많은 말이 들려온다. 그 말을 따라야 할까? 아니면 귀를 닫고 살아야 할까? 난 대개 후자를 택했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답해야 한다. 너, 뭐 먹고살래?






1) 일 년 반 정도 가계부를 썼다. 수입보다는 지출을 알고 싶었다. 수입이야 퇴사를 하게 되면 들쭉날쭉하겠지만 지출은 일정하니까. 식비는 얼마, 교통비는 얼마, 관리비는 얼마 하는 식으로 계산하니 한 달 평균 생활비가 나왔다.


2) 올해 초부터는 가계부 대신 자산현황표를 작성하고 있다. 내 자산이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현금, 예적금, 주식, 펀드, 채권, 원자재, 달러, 퇴직연금 등 운용할 수 있는 자산을 전부 기록했다. 퇴사하기 전까지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월급 및 상여금도 적어뒀다.


3) 내가 소유한 자산에 지출액을 대입했다. 돈을 전혀 벌지 않았을 때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이 나왔다. 추가적인 근로 소득이나 금융 소득이 생기면 이 기간이 더 늘어난다. 생각보다 조급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내 미래가 어느 정도 손에 잡혀서다. 내가 숨을 얼마나 참을 수 있는지 알아야 바다에 뛰어들 수 있다.



있는 돈만 파먹어서는 부족하다. 언젠가는 한계가 온다. 돈을 벌어야 한다. 소득에는 크게 근로소득, 사업소득, 투자소득이 있다.


현재는 근로소득이 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근로소득은 회사를 다니는 이상 안정적으로 지급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인센티브제가 아닌 이상 내 노력이나 성과 여하에 관계없이 일정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 내가 일하지 않으면 현금흐름도 끊기고 만다.


사업소득은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장에 직접 서비스나 재화를 판매하여 얻어낸다.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노마드, 1인 창업, 프리랜서도 여기에 해당한다. 조직을 직접 구성하든 자기 자신이 조직이 되든 누군가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돈을 번다. 리스크와 불안정성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투자소득은 소위 말하는 재테크로 돈을 버는 방식이다. 금융시장에 있는 수많은 자산에 투자하여 양도차익, 배당수익(주식), 임대수익(부동산), 이자수익(채권) 등을 노린다. 부동산부터 주식, 펀드, 채권, 예적금, 원자재 등 투자처는 무궁무진하다. 리스크가 크고 변동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요즘 소위 말하는 N잡은 위와 같이 다양한 수입원을 만드는 작업이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특정 수입원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리스크를 관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N잡을 굳이 해야 할까? 지금 있는 직장에서 노력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맞는 말이다. 다만 모두가 당면한 몇 가지 현실이 있을 뿐이다.


1) 취업난이 심해지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2) 자산 가격의 상승이 근로소득의 상승폭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3) 자신의 다양한 면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분출되고 있고, 이를 충족시켜 줄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했다.


4)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복지재정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조세저항이 심한 데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한국 정치지형도 내에서 증세를 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 와중에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낮다.


5) 4대 매체(TV, 신문, 라디오, 잡지) 이외에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해 시장과 타깃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제 개인도 경제주권을 쥘 수 있다.



꼭 N잡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업을 키우고 있다면 사업에만 집중해야 하고, 회사에서도 일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봐도 회사에만 목을 매고 있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자아실현이나 꿈, 일의 보람 같은 '이상'적인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현재는 근로소득에 의존하고 있다. 계획대로 퇴사를 한다면 그마저도 0이 되겠지. 그때를 대비해 여러 플랫폼을 찔러보고 있고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 한 곳에 올인하기보다는 여러 군데 분산을 하니 마음도 편하고 즐겁다. 다만 N잡은 몰입해야 할 선택지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대안에 동일한 시간과 에너지를 할당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현실을 직시해라. 맞는 말이다. 더 맞는 말은 이거다. 제대로 된 현실을 직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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