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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삶을 걸어봐도 될까?

돈의 의미

by 신거니

최근 재테크 서적을 몇 권 읽었다. 하나같이 돈이 얼마나 좋은 건지 역설한다. 돈이 있으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한마디로 삶에 있어서 가질 수 있는 온갖 불편에서 해방될 수 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시선은 덤이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래서 마땅히 시간을 들여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다.


사실 돈이 어느 정도의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경제적 문제에 찌들어 사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꾸려가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여러 문제를 맞닥뜨릴 개연성이 크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수입과 자산은 꼭 필요하다. 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며 애써 외면하다간 오히려 더 세게 얻어맞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적당한' 수준이 대체 어느 정도인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있다. 1억이 있으면 충분한 건가? 10억? 100억? 아니면 무한대로 뻗어가는 걸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믿는 이는 항상 괴롭다. 자기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핍과 열등감을 동기삼아 돈을 버는 사람은 종국에는 끝나지 않는 경주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기준이 항상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벌려는 노력과 더불어 자신에게 맞는 최적화된 수익점을 찾아야 한다. 추가적인 수입에는 항상 추가적인 노력과 관심이 소요된다. 물론 운이 좋아 한두 번은 별 노력 없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겠지만 성공에는 대개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가 들어간다. 부동산이나 암호화폐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의 책을 읽어보자. 그냥 집에 누워있다가 떼돈을 번 사람은 없다. 신발이 닳아 헤질 정도로 임장을 다니기도 하고, 눈이 빠져라 차트를 분석한다.


물론 노력이 곧바로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다만 성공이라는 결과엔 항상 일정한 노력이 뒤따른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는 정말 인생 그 자체를 걸고 매진한다. 그게 부동산 투자든 주식 투자든 사업이든 간에. 상속이나 복권 당첨 정도를 제외하면 큰 부를 일굴 방법은 결국 일 자체에 투신하는 것이다. 만약 돈이 목적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별 노력 없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이건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런 노력 없이 큰 경제적 대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모두가 그 방법을 사용해 부를 획득할 수 있다. 만약 전 국민이 그런다면 어떨까? 아마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결국 모두의 가처분 소득이 큰 폭으로 감소하지 않을까? 부는 소수가 독점하거나, 혹은 모두가 조금씩 나눠가질 수 있을 뿐이다. 전자는 빈부격차가 큰 경제 모델이고, 후자는 북유럽식 경제 모델이다.


동시에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말은 그래서 공허하다. 돈을 버는 데는 비용이 들어간다. 하루아침에 누가 돈뭉치를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패시브 인컴을 만들든, 사업 모델을 구축하든 마찬가지다. 더 많은 돈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른바 '스노볼 효과'를 얘기한다. 종잣돈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빠르게 자산을 불려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추가적인 수입을 올리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떤 모델을 이용하든 수입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은 어떤 수치로 수렴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더 큰 수입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가?'가 된다. 만약 지금 충분한 자산과 수입이 있다면 차라리 다른 더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전에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애초에 돈은 왜 버는 걸까?


모두가 돈이 좋다고 말한다. 백화점에는 온갖 화려한 명품이 진열되어 있고, 스포츠카나 요트, 대저택이 유혹한다. 돈만 있으면 된다. 돈만 있으면 저 모든 재화, 그리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닌가. 왕처럼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 돈은 곧 사치를 위한 수단이다. 언제든지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위에 살짝 군림할 수 있다면 더 좋고.


돈의 목적은 가장 기본적으로 생존이다. 돈이 없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숨만 쉬어도 돈이 줄줄 새는 세상이다. 굳이 지출내역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입은 항상 있어야 한다. 이 구간에서는 수입의 증가가 곧 행복감의 증가로 이어진다. 라면봉지를 살 때도 손이 떨리다가 이제는 고기나 과일도 마음껏 집을 수 있다.


기초적인 생활 수준을 넘어서면 이제 돈을 버는 목적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앞서 말한 사치를 부리기 위해, 정신적인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또는 남을 돕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목적이 무엇이든 좋다. 다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금액 수준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저 막연하게 '많으면 좋다'라는 무한루프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돈은 많으면 좋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렇다. 100만 원보다는 1,000만 원이 있는 게 좋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한 노력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생각한다면 이제 머리를 굴릴 시간이다. 내 시간 대부분을 희생해서 추구할 만큼의 가치가 돈에 있는 걸까? 아니면 차라리 수입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는 게 나을까? 기준이 없으면 서울에 내 집을 하나 마련하더라도 끝이 없다. 이제 서울 안에서도 강남 쪽에, 강남 안에서도 비싸고 넓은 아파트를 추구한다. 그 안에서도 촘촘하게 나눠진 위계에 따라 계속 위를 바라본다. 더, 더, 더.


이런 모습에 거부감, 내지는 경각심이 느껴진다면 자연스럽다. 사람은 본디 돈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공허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돈이 통장에 쌓인다고 해서 큰 감흥이 생기질 않는다.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숫자에 민감하지 않다. 어느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 일쑤다. 돈은 그 자체로 나쁘지도, 좋지도 않다. 교환가치를 갖도록 합의된 수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돈만 추구하다 보면 인간으로서 가진 무언가를 조금씩 잃고 있다는, 그 서늘한 감각을 지우기 어렵다. '돈이면 다 되는 거 아냐?'라며 자조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에게는 어쩐지 호감도,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그 이전에 인간성이랄지, 존엄성이랄지, 그런 근본적인 아우라가 없다. 돈이 제공하는 과실은 분명 달콤하지만 집착하다 보면 독이 된다. 끝을 알 수 없는 갈증과 공허함만을 남긴다.


따라서 돈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돈에 관한 신념, 그리고 경제관념이다.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으면 도구에 불과한 돈에 잡아먹힌다. 그리고 끝없는 레이스를 펼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결국은 삶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의 문제다. 적어도 난 내가 주도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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