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남이란 실은 자리에 앉자마자 슬픈 예감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미래를 알고 있음에도 꿋꿋하게 정해진 의식을 치러낸다. 약속을 잡고, 파스타인지 화덕피자인지를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공원을 걷는다. 햇빛이 뜨거워서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 이마에 댄다. 그렇게 자외선을 가득 쬐고 나면 어느새 갈 시간이다. 아, 이번에도 아니구나. 지하철에서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미련 없이 걸어 나간다.
네가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나빠서도 아니다. 그저 맞지 않았을 뿐이다. 하긴 생면부지의 남녀가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미약한 가능성에 조금 희망을 걸어봤을 뿐이다. 그저 그뿐이다. 물론 누군가는 엄청난 언변을 발휘해 상황을 역전시키겠지만 나에겐 안타깝게도 그런 능력이 없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다큐멘터리다. 그렇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 그제야 숨이 쉬어진다. 웅크렸던 자아가 한 번에 부풀어 오른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어깨도 말랑하게 펴진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잘 들어가셨냐는 문자를 보낸다. 답장은 한참 뒤에야 온다. 이번에도 아니라는 심증에 확신이 더해진다. 상대방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는 보내줄 시간이다. 그렇게 소개팅 한 사이클이 끝난다. 이제 당분간은 쉬어도 되겠다. 어쩐지 슬퍼 보이지만 실은 난 슬프지가 않다. 누군가와 사귀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니까. 그저 뚜껑을 열어 확인했을 뿐이다.
내가 본건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모습이다. 그렇게 알아간다. 마치 전구가 켜지지 않는 100가지 케이스를 알아냈던 에디슨처럼. 딱 한 번만 켜면 된다. 그 한 번을 위해 다시 한번 미련, 아니 희망을 가져본다. 누군가와 쉽사리 맞을 만큼 둥글둥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