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해서 불안한 걸까
만약 지금 살아가는 현실이 불안하다면 그 감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불안이란 실은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미래는 현재의 시점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아직 실체가 없는 존재다. 일종의 유령과도 같다. 하지만 유령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꽤나 강력하게 한 개인을 사로잡는다. 꽤나 그럴듯한 가설로 얼마든지 증명 아닌 증명을 해낼 수 있어서다.
퇴사를 핑계 삼아 나의 불안감을 정당화할 수는 있겠지만 실은 불안이란 삶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미래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고, 그 시점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직장을 다녀도, 사업을 해도, 백수로 지내도 불안하다. 다만 불안감의 원천이 다르고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원래 불안한 존재니까 이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알아서 잘 살아가면 될까? 실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나 퇴사자가 답해야 할 질문이란 직장인의 그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걷어진 상황이니까. 그렇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생겨버린다. 불안감을 이겨낼 안정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물론 직장인도 여러 가지 불안감에 시달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부에서의 감정이다. 애초에 '내부'가 존재하질 않는 퇴사자는 전적으로 자신에 의존하여 성과를 내야 한다. 자신만의 울타리를 치고 삶을 꾸려가야 한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든다. 직장인과 퇴사자란 실은 서로가 가진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 필요한 존재가 아녔겠느냐고. 퇴사를 했다고 하면 '부럽다, 나도 하고 싶다, 용감하다' 등등 많은 소리를 듣지만 그게 100% 솔직한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내부란 외부가 있어야 성립되는 개념이다. 질서란 혼돈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직장인의 '안정성'이란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퇴사자의 '불안정성'이 있어야 세울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은연중에 분명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이건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다. 그저 자연스레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을 단순히 퇴사자, 직장인으로 나누는 이 이분법도 웃기다. 퇴사자도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고, 직장인도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올 수 있다. 차를 타면 운전자가 되고 내리면 보행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불안함이란 역시나 삶에 포함된 일종의 패키지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 불안감이 있기에 사람은 귀찮음을 무릅쓰고 뭔가를 시도한다. 비관적인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 물론 이 모든 사실을 인지한다고 해서 불안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감정이라는 게 그렇게 쉽사리 이성적인 논리 전개를 통해 사라질 것이었다면 애초에 문제가 될 일도 없다.
결국은 수용의 문제다. 니체의 그 유명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든 뭐든 간에 말이다. 물론 수용한다고 해서 불안이 한 번에 불식되지는 않는다. 다만 곁에 두고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사람의 운명이란 어떤 형태로든 굴러가게 되어 있고, 미래란 실은 생각보다 견딜만하다는 대전제와 함께. 그래서 난 오늘도 글을 쓴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