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믿는 나를 믿어

어지러운 세상 속 무엇을 믿을까

by 신거니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장 거칠게 나누면 '허무주의, 상대주의, 절대주의'다. 허무주의는 이 세상엔 어떠한 의미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가치란 없으며 오로지 개인에게서 나오는 상대적인 가치만이 있다고 생각한다. 절대주의는 하나의 절대적 가치를 상정한다.


1.

허무주의의 문제점은 그 자체로 허무하다는 데에 있다. 세상은 허무하다. 그래서? 추가적인 대답은 들려줄 수 없다. 물론 이러이러하기에 허무하다는 그런 얘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그게 전부다. 또한 허무주의는 '세상이 허무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기모순적인 신념이다. 스스로는 '신념'이 아닌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둘 다 해당한다.


2.

상대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너도 옳고 나도 옳다'식의 해결책을 내세우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결정에는 항상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마다 가진 가치관이 다 맞다면 대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방향에서건 결과물이 도출된다면 이는 '절대적 가치'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한 '모든 신념은 그 자체로 옳다'는 '절대적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는, 다소 말장난 같은 모순은 덤이다.


3.

그렇다면 절대주의는 어떨까? 절대주의는 허무주의, 그리고 상대주의와 결을 달리하는 사상이다. 이 세상에는 어떤 형태든 절대적으로 신봉해야 할 신념이 있으며, 모든 의사결정은 그 신념에 따른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만 무엇이 그 절대적 가치의 왕좌에 올라야 할지, 역시나 그 기준이 모호하다. 게다가 절대적 가치는 현실의 굴곡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면 가치 또한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기성의 신념을 강요한다. 이는 대개 소수자의 고통을 유발한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허무주의, 상대주의, 절대주의적 신념을 고수하고 산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허무하고, 너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나의 말이 옳다고 믿으면서. 그리고 한 가지 모순은 '절대주의'가 가장 '상대적'인 신념체계라는 사실이다. 즉 인간은 저마다 가진 가치를 '절대적'이라고 믿는 '상대성'을 지닌다.


물론 각 시대마다 그 시간을 관통하는 일종의 시대정신이 있기 마련이다. 중세에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현대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변주가 일어난다. 심지어 파시즘이나 공산주의가 지배적이던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그 어떤 사상도 절대적일 수 없음을 드러낸다. 종교도 수많은 형태로 분화했고, 하나같이 자신이 원류라고 주장하지만 대개는 본래의 가치에서는 멀어진 채 그저 '내가 맞다'는 믿음을 고수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퇴사와 관련한 매거진에서 주절주절 써 내려가나, 이런 궁금증이 들 것이다. 최근 퇴사와 독립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의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아주 깊게 공감한다는 사람, 시큰둥한 사람, 오히려 반감을 가진 사람도 있다. 내가 낸 책은 어디까지나 '나'의 관점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의 상황, 신념, 가치관, 성향이 있다. 그 모두를 무시하고 내 생각을 밀어붙이는 건 절대주의가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허무주의나 상대주의에 빠지면 그 어떤 논의도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나만의 이야기를 계속 쌓아가되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거나 함부로 권하지는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퇴사를 한다, 안 한다의 양자택일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퇴사를 할 사람은 아무리 뜯어말려도 한다. 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리 반대되는 증거를 들이밀어도 하지 않는다. 퇴사는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든,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든, 별 생각이 없든, 뭐든 간에.


영화 <돈 룩 업>에는 거대한 운석이 지구로 떨어진다는 명명백백한 증거를 들이미는데도 무시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운석이 떨어진다는 '선동'에 넘어가지 말자며 '돈 룩 업'(Don't look up) 당까지 만든다. 결국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운석이 다가오자 마지못해 행동에 들어간다. 사람을 지배하는 절대적 신념이란 실은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사상도, 뭣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저 자신이 '종교를 믿는다고, 사상을 믿는다고' 믿을 뿐이다. 즉 신념을 믿는 게 아니라 신념을 믿는 나를 믿는다.


그 수많은 '나'가 부딪히며 살아간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는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믿음'을 믿는 사람, '나는 진보 정당을 지지한다는 믿음'을 믿는 사람이 싸운다. 다른 한쪽에서는 성별, 신념, 민초-반민초, 부먹-찍먹, 깻잎잡아준다-깻잎잡아주면안된다 파로 나뉘어 논쟁을 한다. 다만 거대한 흐름 속에서는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 앞서 말한 관점에서 말하면 그 희망을 믿는 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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