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감을 안고 살아가는 중
공허감을 파고드는 일이란 실은 가장 공허감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공허함을 마음 한 구석에 항상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내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도 쉽사리 상처받지 않는 이유도, 기쁜 감정이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 이유도,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게 있어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그 구멍의 가장자리를 따라 간신히 발을 떼는 행위와 같다. 누군가에겐 외로움이나 우울감으로 정의될 이 감정을 난 공허감이라고 표현한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하는 생각이 엄습해올 때면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자고 스스로를 흔들어야 한다. 이런 나의 내면, 내지는 생각과 현실의 반응 사이에는 항상 시차가 생긴다. 그렇게 과묵한 사람, 별 감정 없는 사람, 답답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론 공허감에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 실제로 그 감정을 잊고 마음껏 삶을 누리는 순간은 수시로 찾아오니까. 다만 적어도 나 자신만은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 것뿐이다.
공허감 앞에서 난 더 깊이 들어가 보자고 다짐했다. 마치 프리다이빙 선수처럼 숨을 한껏 들이쉬고 내려간다. 수면 위에서는 빛이 쏟아진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아래로 갈수록 그림자가 더 짙어진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면에 대한 이해를 넓혀간다. 가끔은 쓸만한 녀석도 건져 올린다. 하지만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시간을 지체하면 숨이 막히니까.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친구들을 만나고 운동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햇빛을 쬔다.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다. 이게 내 기본값이다. 그렇게 자유로이 시간의 조각을 음미하다 보면 기분이 나아진다. 이 좋은 기분에 공허감이 브레이크를 걸 때가 있다.
덜컥, 의미 없다.
덜컥, 공허하다.
덜컥, 소용없다.
굳이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수용이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과정이다. 그래, 의미 없지, 그래, 공허하지, 그래, 소용없지. 하지만 이런 삶이나마 살아보기로 다짐한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아직 듣지 못한 노래가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동안은,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