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하는 이유
2022년 기준 시간당 최저임금은 9,160원이다. 즉 '정상적'으로 계약에 의해 노동을 제공하는 경우 최소 9,160원 이상의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그리고 받아야 한다). 주 5일에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하면 약 190만 원 정도의 월급이다.
다만 세상에는 그보다 시급이 훨씬 적은, 심지어 0원이거나 마이너스인 일이 있기 마련이다. 사실 이걸 '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애매모호하다. 일이란 자고로 당장의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물론 자영업의 경우 일시적으로는 이런 경우가 생기고는 한다. 손님이 거의 찾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비용을 제한 수익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제반 비용 없이 근무하는 프리랜서의 경우에도 같은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빈번하게. 유튜브나 브런치 같은 플랫폼에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이른바 크리에이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직접적인 수입은 0원이다. 전기세를 생각하면 오히려 손해다.
물론 브런치에 있는 포스팅을 엮어서 책을 출판했고, 인세를 받고 있으니 간접적으로는 수익을 내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고민의 지점이 나온다. 사실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그게 직접적이든, 혹은 간접적이든 상관이 없다. 다만 그 액수가 충분하지 않다면, 최소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최저임금이란 일종의 은행 예적금 금리와 같다. 만약 어떤 투자 상품이 예적금보다 못한 수익률을 낸다면?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은행 예적금은 국채를 제외하면 가장 안정적인 투자수단이다. 그런데 리스크를 떠안으면서도 기대수익은 그보다 못하다? 그 상품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지루하고 하찮은 일이어도 고용관계에서 이루어지면 최저임금은 받는다. 그럼 '콘텐츠 생산 노동'을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지속할 수 있을까? 경제적인 보상이 일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자원봉사도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일'은 당장의 보상이 아닌 미래에 찾아올 결과물을 염두에 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물론 누군가는 자아실현이나 인생의 의미를 얘기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내가 일하는 궁극적인 목적도 실은 여기에 있다. 다만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길이 어렵다. 즉각적인 수익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기대에 베팅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길을 택했다. 왜일까? 종국에는 나름의 성공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당장에는 직장에서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게 가장 좋아 보인다. 하지만 직장에서의 월급은 내 실력이 아니라 시스템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물론 인센티브나 성과급 제도가 있다면 결과물에 일부 내 실력과 능력이 반영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고용관계에 있기에 주어지는 대가다. 법적으로는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으니 주는 것뿐이다.
한국의 평균 신입사원 연령은 31살이다. 평균 퇴직 시점은 49세다. 즉 직장에서의 고용관계는 길어야 20년 정도다. 그리고 그 뒤로 몇십 년에 달하는 기나긴 세월이 기다리고 있다. 몇몇을 제외하고 직장인은 실력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보상을 받는다. 즉 기존에 이미 갖춰진 설비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으로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퇴직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 시스템은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니다. 이제 내가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 진작에 사이드 프로젝트나 부업을 했다면 그래도 실마리가 있다. 평생을 직장 하나만 바라보고, 그 직함과 명함에 취해 살았다면 갑자기 닥친 현실에 혼란스럽다. 이건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금 당장 겪고 있는 현재다. 한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은퇴자의 약 60%는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퇴직 이후에도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든다. 대개 재취업에 실패하고 성공하더라도 약 70%는 2년 이내에 다시 실업자가 된다.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카페나 치킨집, 세탁소 등 자영업자가 된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24.6%(2019, 통계청)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럴 형편도 안되면 단순 노동으로 내몰린다. 택배 상하차, 배달업, 청소업, 경비 근로자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육체노동인데 이미 고령의 몸을 이끌고 지속하기에는 쉽지 않다. 이렇게 가난의 길로 빠진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3.4%(2018, 통계청)로 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소위 MZ세대의 상황은 더 심각해질 예정이다.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더 길게 살고, 더 가난하게 산다. 한국 여성의 기대수명은 2030년을 기준으로 90세가 넘을 예정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나마 연금이나 자가 주택이라도 있던 베이비 부머 세대와는 다르게 연금은 고갈될 예정이고, 이미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은 집을 사기는 요원하다.
물론 누군가는 분명 이 와중에 알뜰살뜰하게 집도 사고 돈도 벌고 나름 부유한 삶을 누린다. 그래서 위와 같은 비관론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평균과 통계의 문제다. 하지만 그저 잘 될 거라는 낙천적인 희망에 기대를 걸어보기에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회사는 언젠가 나를 자른다. 아무런 도구도 쥐어주지 않고서 야생으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괴롭다.
재테크로 파이어족이 되기는 어렵다. 40살 이전에 이룬다는 꿈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100세 시대에는 너무 리스크가 큰 전략이다. (따져보면 1년에 몇십 퍼센트의 수익률을 계속 올려야 한다.)
로또 복권의 당첨확률은 약 800만 분의 1이고, 평균 당첨금은 세후 13억 원 정도다. 참고로 2022년 기준 서울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약 11억 원이다.
2018년 기준 자영업자의 5년 이내 폐업률은 약 73%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지원금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형편이다. 이것도 창업 비용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이런 전제를 안고 다른 대안을 살펴보았고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리고 사업이라는 카드가 눈에 띄었다. 송길영 작가는 책 <그냥 하지 말라>에서 종국엔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프로바이더'가 살아남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최근 한국은 이른바 K-콘텐츠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그럼 콘텐츠만 잔뜩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어렵다. 유튜브든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여타의 플랫폼에서는 항상 '레드오션'이라는 말이 들려온다. 역시 세상이 그리 녹록지 않다. 단순히 경쟁이 치열해서 그런 게 아니다. 콘텐츠 생산 노동에 너무 염가의 가격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에이터의 가장 큰 고민은 앞에서 살펴본 '적절한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난 현재 책도 출간했고, 유튜브도 하고 있고, 브런치에 글도 연재하고 있고, 팟캐스트도 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큰 수입은 스타트업 파트타임에서 온다. 책 인세를 제외하면 나머지 플랫폼에서의 직접적인 수입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책 인세도 생활을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플랫폼을 통한 광고 수익 등의 모델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속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콘텐츠의 질과 양을 올려야 한다. 적어도 양이라도 늘려야 한다. 콘텐츠의 생명은 노출이다. 일단 많은 이들에게 뿌려지면 그중 일부만 유입이 되어도 트래픽은 자연스레 증가한다. 그래서 아주 공들여 한 달에 한 두 개의 영상을 올리는 것보다 매주, 혹은 매일 영상을 올리는 게 낫다. 콘텐츠에 들인 시간과 조회수는 비례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질이 낮으면 아무도 찾질 않으니 이건 염두에 두어야 한다.
콘텐츠를 통한 수입 모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트래픽, 그중에서도 유효 트래픽이 가장 중요하다. 한두 번 왔다가 떠나가는 뜨내기손님이 아니라 단골손님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들이 팬덤으로 굳어지면 탄탄한 기반을 다지는 셈이다.
내 콘텐츠가 공짜로 뿌려지는 전단지가 아니라 '상품'이 되려면 일정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이는 마치 맛집의 생성 원리와도 같다. 애초에 맛이 좋아서 맛집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기에 맛집이 되기도 한다. 콘텐츠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건 결국 팬덤이다.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해도 조금만 들춰보면 그 실체가 낯낯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유튜브로 돈 벌기 쉽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여, 한 번이라도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올려보라. 그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과 고민을 했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콘텐츠는 '팬덤에게 제공되는 질 좋은 유료 상품', 혹은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무료 상품'이 되어야 한다. 물론 둘 다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전자는 상품 자체를 판매하며 수수료를 받고, 후자는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광고 수익 등 부수입을 받는다.
굳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팬덤'이라고 못 박은 이유는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사기에 가까운 언변을 발휘해 허접한 상품을 판매할 수는 있다. ('부자 되기 싫으면 이 파일 사지 마세요.pdf'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사기(?)를 당한 수많은 이들의 간증이 이어질 것이고 줄줄이 구매자가 이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 진짜 팬 1,000명 정도만 모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최소한 밥 굶을 일은 없다.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전제 하에 일을 지속할 수 있다. 팬은 팬을 부르고 계속 퍼진다. 별도의 마케팅 비용(돈과 시간, 그리고 에너지)을 지출하지 않고도 수세가 불어난다. 그렇게 '내 일'이 자리를 잡는다. 물론 이 기반은 마냥 안정적이진 않다. 그래서 결국엔 사업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만약 내 팬이 있다면 사업을 정착시키기에도 수월하다. 적어도 시작은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결과 난 퇴사를 결정했고, 콘텐츠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이 결정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걱정 반 기대 반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