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쓸모

돈은 인생의 전부도, 심지어 대부분도 아니다

by 신거니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다.'라는 명제에 거부감이 생기다가도 마냥 부정할 수 없는 이유는, 돈이 그 자신의 교환가치로서 분명하게 증명해내는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금속 조각, 천 조각(지폐는 종이가 아니라 섬유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 전산 어딘가에 등록된 숫자로 표상되는 존재이면서도 어쩌면 그리 훌륭히 삶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턱턱 품에 안겨주는지. 이쯤 되면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다만 이러한 돈의 쓸모를 인정하는 것과 돈을 그 자체로 숭배하며 절대시 하는 것, 그 외의 '이상적이고 말랑말랑한 영역'을 오로지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백안시하는 건 분명 다른 문제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책을 읽는 이유를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고 하신 분이 있었다. 그 분에 따르면 부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책을 많이 본다는 것이었다. 책을 많이 보면 세상을 보는 식견이 넓어지고 남들보다 빨리 트렌드를 잡을 수 있으니까.


물론 '돈을 벌고 싶어서 책을 본다'는 행위 자체에 문제가 될 건 없다.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책과 재산의 상관관계가 그토록 컸다면 출판사의 에디터나 도서관 사서가 가장 큰 부를 거머쥐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뿐이었고,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지 않으면 무가치한 존재로 은근히 치부되는 소위 '쓸모론'이 저변에 깔린 주장이라는 느낌을 받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돈이 되지 않으면, 당장의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걸까? 오로지 '쓸모'만이 쓸모 있는 걸까?


물론 제 아무리 돈을 찬양하고 집에 돈을 위한 제단을 지은 사람이라고 해도 돈 외에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가치 역시 어떻게든 경제적으로 환산하려고 하는 버릇이 있을 뿐이다. 사실 경제적 가치로 치환한다면 세상만사가 참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 환경보호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 사랑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게 맞을까?


돈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쓸모의 쓸모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정에 감응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데 쓰이는 문법이 오로지 경제학 교과서에서만 튀어나온다면 그건 단순히 차가운 세상이 아니라 잘못된 세상이다. 세상에 완전한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진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짓이 되어버린다. 그 사이에서 최선의 길을 조율하고 맞춰가는 게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서의 책무라고 느낀다. 그리고 경제적 보상, 즉 돈으로 대표되는 잣대는 바퀴가 빠져버린 자동차처럼 온갖 잡음을 내며 굴러간다.


게다가 돈이 향하는 최종 목적지 역시 돈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에 닿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10억을 벌면 20억을 벌고 싶고, 20억을 벌면 100억을 벌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숫자 그 자체가 주는 환희와 희열에 몸을 떨기보다는 돈이 제공해주는 안정성, 접근성, 편의성 등에 만족할 뿐이다. 돈을 벌어야 내가 인정을 받는다. 인정이란 그 자체로는 돈이 아니다. 돈을 벌어야 우리 가족이 안락하게 살 수 있다. 안락함은 그 자체로는 돈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돈이 아니라, 돈 외의 많은 재화와 서비스이며, 이 역시 그 기저에 깔린 가치에 대한 소비다. 안락함, 사랑, 편안함, 안정감, 편의성, 명예 등을 돈으로 산다. 적어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왜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노라고 여기는 걸까? 사랑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 삶의 지혜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 물론 누군가는 데이트할 때 필요한 비용이나 독서모임을 갈 때 드는 비용 청구서를 들이대며 역시 돈이 없으면 안 된다고 역설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건 '행위'에 들어가는 비용이지 '가치'에 맞닿아 있는 비용은 아니다.


현대사회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이상 돈이 필요하다. 나 역시 많은 돈을 벌고 싶다. 대신 그러한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나에게 더 맞는 몫을 고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무조건 많은 돈이 무조건 정답이 아님을, 많은 돈에는 그만큼의 엄중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이미 수많은 작품과 또 사회에서 떠도는 여러 이야기가 증명하고 있다. 돈은 값비싼 비용을 대야 얻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이 삶 그 자체가 되었을 때, 오로지 돈만을 위한 인생으로 변질된다. 삶의 쓸모가 딱 그 정도에서 멈춰버린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