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길지 않은 시간 안에서 찾아낸 짧은 한 문장.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쓸까? 정체성에 대해 구태여 한 번씩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어둑어둑한 등잔 밑이 환하게 밝혀져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보고 직시할 수 있으니까. 세심하게 다듬어진 시선에서만 느껴지는 그 정확함.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 이해받았다는 느낌. 그 느낌이 좋아서.
처음 시작은 알 길이 없으나 어느 사이엔가 일기장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구태여 내면을 지면에 옮기는 위험한 작업을 하나씩 해치웠다.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표지만 넘기면 발가벗겨진 몸뚱아리가 쏟아질 수 있었는데도.
지방에 살던 작은 아이가 할 수 있었던 건, 친구에게서 이해받지 못한 아이가 할 수 있었던 건, 어른이 되려면 까마득한 세월을 힘겹게 넘겨야 했던 아이가 할 수 있었던 건, 딱 그 정도였다. 스스로가 조금은, 아니 조금 많이 특이하다는걸 알고 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이다.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차라리 '행복'했을 것을. 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씁쓸한 글쓰기를 붙잡고 있는 걸까.
누군가는 천성이라고, 다른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착각이라고 부를 하나의 단어.
[글]
[글]을 쓴다.
처음에는 일기장에, 나중에는 블로그에, 세상 구석구석에 부지런을 떨며 [글]을 쓴다.
[글]을 쓰며 느껴지는 영혼의 반향이라든지, 타인과 [글]로서 교감하며 느껴지는 공명이라든지, 하얀 눈밭에 발자국을 새기듯 그려나가는 크로키 같은 그 느낌이라든지. 이유는 충분하다. 그래서.
[글]을 쓰기도(Write)하면서 쓰기도(Use) 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 살아왔다. 살아갈 것이다. 살아야만 한다.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야 하니까. 쓰면서 살아야 하니까. 써도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충만하다.
다른 사람이 눈으로 [글]을 듣고 있음을, 무모하리만치 강하게 확신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시간과, 정신과, 감각에 한 줄의 문장이 스며들어가리라는 걸 아니까. 그래서.
써놓고도 잊어버릴 [글]을 마음껏 쓰면서, 이 모든 순간이 그저 헛되지만은 않았구나, 이렇게 되뇌면서. 나보다 오래 살아갈 [글]을 어딘가에 남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