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결이 맞는 다섯 가지 유형
누군가 내게 이상형을 묻는다면 '결이 맞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결이 맞는다는 건 뭘까? 그건 사람 대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성격, 가치관, 취향 등이 부드럽게 잘 맞아 들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이게 반드시 같은 성격, 같은 취향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난 내향적이지만 반드시 내향적인 사람과 맞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결이 맞지 않는 내향인과의 만남에 숨이 막힐 때가 많다. 그렇다고 무조건 반대 성향이 잘 맞다는 법도 없다. 아무리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으니까.
문제는 개개인마다 생각하는 '결'의 정의가 다르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성격만 맞으면 나머진 어떻게든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종교관, 정치관, 생활습관까지 세세하게 따지는 경우가 있다. 누구나 자신한테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그 '맞는다'의 정도와 양상이 저마다 다르다.
사실 결이 맞는지 아닌지는 어느 정도 관계가 무르익고 나서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당장에 보이는 외모, 말투, 능력 등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 유형으로도 단정 짓기 어렵다. MBTI 궁합표라는 것도 있던데 사실 그렇게 신뢰하진 않는다. 같은 유형이라도 유난히 더 맞는 사람이 있고,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므로.
다만 어느 정도는 이 결이라는 걸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이니 부디 '믿고 걸러야 할 10가지 인간 유형'같은 글과 같은 잣대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최소한의 요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피상적으로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1. 개그를 개그로, 다큐를 다큐로 받는 사람
살다 보면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된다. 사적인 관계든 공적인 관계든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농을 던질 때도 있고, 진지하게 논할 때도 있다. 대화의 결이 잘 맞는다는 건 상호 간의 발화 의도와 대화 양상이 일치한다는 뜻이다. 즉 개그로 던진 말을 개그로 받고, 다큐로 던진 말을 다큐로 받는 사람이다. 물론 상대방을 상처주기 위해, 혹은 생각 없이 무심히 던진 말이 아니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겠지만. 흔히 말하는 눈치 하고는 의미가 다르다. 그때그때 상대방에 맞춰 반응하는 게 아니라 머리 굴리지 않고도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지는 경우다.
2. 약자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개인적으로 도덕성의 근원이란 '약자에 대한 연민'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곁에 있는 사람이 대기업 회장의 안위나 전직 대통령의 위신보다는 눈앞에서 힘들어하는 소시민에 더 공감했으면 좋겠다. '누가 힘든 일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식의 발언보다는 측은지심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연민과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람과 있으면 저 깊은 단전에서부터 서늘함이 올라온다. 내가 약해지면 언제든 목을 물어뜯고 유유히 떠날 것이므로.
3. 공허감을 이해하는 사람
단순히 '공허한' 사람이 아니다. 공허함을 지루함이나 외로움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가진 공허감을 알아봐 주고, 같이 채워나갈 수 있는 건강한 방법을 찾는 사람이다. 책이나 영화, 각종 예술, 자연, 운동 등에서.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 존재가 이해받는 느낌이다. 그리고 굉장히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4.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숙고할 수 있는 사람
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작가다. 말에 굉장히 민감하다. 같은 생각이라도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수만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걸 안다. '난 솔직하고 순수해'라는 스탠스로 폐부를 찌르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다면 그건 솔직한 게 아니라 사악한 거다. 적어도 미필적 고의라고 볼 수 있다.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 이상한 궤변을 끌고 와서 우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주변 사람들이 몰라서 가만 두는 게 아니다. 알지만 참는 것이다.
5.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람
바닥에 드러누워 어린아이처럼 요구만 하는 어른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타인에게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생활면에서 대책 없이 의존하거나, 해야 하는 일을 무책임하게 회피하는 유형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요리를 스스로 하는 사람을 높이 산다. (요리를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요리' 자체가 아니므로) 요리를 하려면 재료를 사야 하고, 레시피를 익혀야 하고,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고, 상을 차리고, 환기도 시키고, 설거지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과 주변 사람을 먹이기 위해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책임을 다하는 그 모습이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