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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해도 오늘을 믿는다

왜냐면

by 신거니

더 많은 걸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했다면, 목표하던 바를 이루는 것으로 되었다면 삶은 훨씬 간단한 녀석이었겠지. 하지만 다양한 감정이 말을 걸어오는데 대답을 하지 못하겠더라.


매너리즘: "이게 다야? 더 없어?"

허무감: "이게 다야? 더 없어?"

고독감: "이게 다야? 더 없어?"

나: "...."


물론 난 바지런히 새로운 걸 찾아 헤매고, 골백번도 더 즐기던 노래를 오늘도 듣고, 어딘가 헛헛한 감정에 가슴을 쥐어뜯기도 해.


뭐가 문제일까? 하고 붙잡아도 사실 들려줄 말은 없어.


사는 게 원래 이런 건 아닐까? 하고 되묻게 되고,

삶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구나. 하고 괜히 담담해지니까.


난 오늘을 살아.

오늘만 사는 건 아냐.

그런 사람은 내일을 살 수 없어.

내일이 되면 오늘이 될 그날을.


그냥 느끼는 거야.


지금의 햇살과,

지금의 미세먼지와,

지금의 고통과,

지금의 죽음과,

지금의 삶과,

지금의 지난함과,

지금의 허무함과,

지금의 고독과,

지금의 지금을.


이 과정은 보이는 것만큼 우아하진 않아. 그냥 '나는 오늘부터 오늘을 살기로 했다'라고 다짐한다고 해서 쉽게 얻어낼 수 있을 만큼 만만하지도 않고. 어쩌면 평생을 두고 풀어야 할 매듭처럼 단단하게 꼬여있지.


그냥 수많은 선택의 갈래 앞에서 끈 하나를 붙잡고, 일종의 믿음으로 사는 거야. 사람은 믿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제대로 지낼 수 없으니까.


나에게는 일종의 종교일지 모를,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믿음. 나를 믿는 거.


나를 왜 믿어?

나를 어떻게 믿어?

나의 무엇을 보고 믿어?


왜냐면 언젠가 난 죽을 거고,

내가 내렸던 모든 선택은 박제가 되어 과거에 갇힐 거고,

그러면 그저 있는 건 지금의 오늘의 현재의 여기의 나였음을 알게 될 테니까.

그래서 그럴 뿐이야.


거부하고 밀쳐내고 분노해도 그저 고통이 따르지. 무용한 고통이. 그저 삶을 죽음보다 못하게 만드는 고통이.

그래서 받아들일 뿐이야.


물론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불만을 늘어놓고, 세상 비관적인 눈을 치켜뜨고, 때로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아버리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일상이라는 궤도로 돌아올 걸 믿어. 모든 건 믿음이니까. 할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니까.


그래서 난 오늘을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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