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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y 01. 2023

애매한 재능이 날 행복하게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느 것에도 '특출 나지' 않았던 난 한 분야만 깊게 파고드는 걸 일찍부터 포기해야 했다. 대신 곁가지처럼 위태롭게 매달린 '애매한' 재능에 심폐소생술을 했다. 천재가 아니라는 자각은 크게 두 가지 결론으로 이어졌다. 하나, 애매한 재능을 이용해 어느 분야든 나아갈 수 있다. 둘, 다만 어떤 분야든 Top of Top이 될 수는 없다.


어느 분야에서 특출 난 재능을 가진 이를 보면 경외심에 이어 측은함이 몰려올 때가 가끔 있다. 물론 그 재능을 이용해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쓸어 담는 사람에게 굳이 그런 마음을 품을 필요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재능의 함정'에 갇혀버린 이들을 향한 인간적인 연민을 감출 길이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피아노 연주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그럼 어떤 삶이 펼쳐질까? 끊임없이 분투하고 손가락을 갈아 넣은 끝에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거나, 최악의 경우 피아노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그저 미결의 백일몽으로 남아 평생을 괴로워할 수도 있다. 피아노를 전혀 치지도 못하거니와 재능도 없는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을 미래다.


뛰어난 재능이란 이처럼 필연적인 고통(갈리거나 좌절하거나)을 야기한다. 사실 '행복'의 관점에서는 독이 되는 존재에 불과하다. 게다가 재능은 성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성공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애매한 재능을 여러 개 가지고 저글링을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대다수의 사람은 여기에 해당한다.


나 역시 애매한 재능을 몇 개 가지고 있다. 여기서의 '애매함'이란 '아주 특출 나게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 너 잘 하는구나." 수준의 칭찬을 들으며 어깨가 조금 으쓱해지는 정도'를 의미한다. 굳이 숫자로 표현하자면 100명 중에 20~30등 안에 들 수 있는 범주의 재능이랄까? 


그 정도의 재능도 갖추지 못했노라며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50등이나 70등, 심지어 100등을 위한 자리도 하나씩은 마련해 둔다. 게다가 여기서의 재능이란 다르게 표현하면 관심이나 취향이다. 의식적으로 한 분야만 몇 년을 파면 충분히 애매한 재능을 갖출 수 있다. 시장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정도만 있으면 관련한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한마디로 돈은 벌어먹고 산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애매하게 잘하는 일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 특출 난 하나의 재능은 특정한 환경에서만 그 유려함을 뽐내지만, 여러 개의 애매한 재능은 적재적소에 활용될 수 있다. 이를 아예 다발로 묶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불행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 하나 뾰족하질 않으니 이랬다 저랬다 하다가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불안감도 커진다. 어차피 정상의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도 느낀다. 애매한 재능에는 내려놓음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파고드는 가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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