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법
월급날이 되면 정해진 금액이 통장에 찍힌다. 은행 앱을 켜서 그 숫자를 바라본다. 이 숫자는 다른 서비스나 재화, 자산과 교환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꼭 소비를 하거나 특정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돈은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주체는 나다. 돈을 쥐고 있는 나.
돈 자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당연함을 잊고 사는 게 또한 사람이다. 현금다발을 사과박스에라도 쟁여두지 않는다면 돈 자체는 얌전히 전산에 등록되어있다. 그 돈의 흐름을 제어하는 게 돈의 주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돈은 내 손을 떠나 어딘가로 흐른다. 나 역시 그 흐름의 일부를 붙잡는다.
물이 흐르거나 고이듯 돈도 마찬가지다. 돈이 흐르면 유량(Flow), 돈이 고이면 저량(Stock)이라고 부른다.
흔히 말하는 현금흐름은 유량(Flow)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돈을 쓰거나 벌면 현금흐름이 발생한다.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 중에서도 현금흐름은 꽤나 중요하다. 기업은 영업활동, 재무활동, 투자활동을 통해 현금을 유입하거나 유출한다. 현금은 마치 혈액과 같다. 재무 건전성이 악화되면 금방 쓰러진다. 물론 빚을 지는 식으로 연명이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오래갈 수 없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쓰게 되면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빚을 지게 된다. 기업이 파산하듯 개인도 파산할 수 있고 부채에 허덕인다. 작더라도 쓰는 돈보다 버는 돈이 더 많다면 생존이 가능하다. 그렇게 조금씩 돈이 쌓여간다.
돈이 쌓이면 이는 저량(Stock)이 된다. 저량은 각종 자산의 형태를 띤다. 현금, 부동산, 채권, 예적금 등 다양하다. 어떤 이는 저량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다. 과도한 빚을 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자본잠식 상태다. 주식회사가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더 심하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는다.
돈을 관리해야 한다, 재테크를 해야 한다 말이 많다. 돈은 추상적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막연한 존재다. 실체가 없어 보이니까. 그래서 현금보다 카드로 결제할 때 더 많은 돈을 쓴다고 한다.
돈을 관리하는건 유량과 저량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돈이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 돈이 얼마나 쌓여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기업은 현금흐름표, 손익계산서, 재무제표 등을 작성하고 이를 분기마다 공시한다. 개인은 자신의 자금상황을 공시할 필요도 없고, 기업처럼 엄밀하게 따질 이유도 없다. 다만 자신의 현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한다.
개인으로 치면 유량을 가계부로, 저량을 자산현황표로 나타낼 수 있다.
가계부는 말 그대로 얼마를 쓰고 버는지 알아보기 위한 용도다. 신용카드 할부 서비스와 적절한 소액대출을 이용하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쓸 수 있는 시대다. 만약 매달 쓰는 돈이 버는 돈보다 많다면 적자다. 다만 액수 자체보다 중요한 건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느냐다.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쓴 만원과 교통벌금으로 납부한 만원은 다르다. 부자일수록 큰돈에 후하고 작은 돈에 인색하다고 한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소비하거나 투자하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지만, 쓸데없이 지출되는 돈은 질색한다.
자산현황표를 이용하면 수입과 지출의 결과로 내가 들고 있는 자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가계부는 일정 기간을 두고 쓰지만, 자산현황표는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난 매달 초 자산현황표를 작성하고 있다. 현금은 얼마가 있는지,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자산을 얼마가 있는지 쭉 써내려간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돈이 한눈에 들어온다. 숫자를 한데 모아 정리하면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별도의 투자를 하지 않는데도 현금이 줄어든다면 소비습관을 점검해야 한다. 주식 평가금액이 계속 줄어들거나 늘어난다면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특정 종목의 가격이 상승했다면 왜 그런지, 하락했다면 왜 그런지 살펴보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돈을 숫자로 바라봐야 한다. 보복 소비, 뇌동매매, 섣부른 단타와 올인 투자는 변덕스러운 감정의 산물이다. 감정 그 자체는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지만 돈 문제에 있어선 아닐 수 있다. 돈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 써야 할 때 쓰지 않고, 쓰지 말아야 할 때 쓴다.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 다만 자유를 보장하고 선택지를 넓히는 숫자다. 그래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 있는 힘껏 껴안다가도 일정한 마음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너무 취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 상태. 그게 돈과 나의 적정한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