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고 물으니 세상이 변했다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 호기심이 많은 어린아이처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왜라는 물음은 논리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낸다. 단단한 속살이 나올 때까지. 만약 내 길이 단단한 무언가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면 더 이상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혹은 대충 얼버무리게 된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에, 가족에게, 사회에 물어보자. 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열에 아홉은 당황한다. 그 질문 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라면 더더욱. 누군가는 원래, 그냥, 당연하니까라고 답해준다. 한 번도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의 대답이다. 물론 그게 최선일 때도 있다. 하지만 대개 더 나은 대안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왜 그 대안을 택할 수 없을까?
만약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아무리 소비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다면 물어야 한다. 나 자신에게. 왜라는 질문은 본질을 찾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만 남기고 군더더기를 걷어낸다. 자신과의 대화란 거울을 보고 하는 혼잣말이 아니라,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것이다.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완전히 납득하지 못해도 된다. 파고든 깊이만큼 내 신념은 보다 더 단단해진다.
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일'이다. 그래서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왜 일할까?
교세라를 창업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왜 일하는가>라는 책을 통해 일의 본질을 찾아나간다. 그는 일 자체를 사랑했고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도구로 삼았다. 높은 연봉, 명예는 그저 부산물이었다.
옆팀 팀장님과 커피를 마실 일이 있었다. 그분이 내게 물었다. 이 회사 왜 다니고 있냐고. 돈을 벌려고 다니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일의 본질이 아니다. 그분 말마따나 돈 버는 방법은 수없이 많고 굳이 이곳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 딱 봐도 흥미가 없어 보이는 일을 왜 계속하고 있냐는 거다.
그 자리에선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는 왜 이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일을 하는 걸까? 이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그 이후에 일할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퇴사하는 보람도 없지 않을까?
우선 돈이라는 주제로 시작해보자. 저마다의 대답은 다르겠지만 난 이렇게 생각했다.
Q1. 왜 일을 해야 할까?
A1. 돈을 벌기 위해서.
Q2. 돈을 왜 벌어야 할까?
A2.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이 대답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다. 생계, 그리고 책임이다.
생계는 생존과 맞닿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생존하지 못한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돈이 꼭 필요하다.
책임은 결과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한다. 그리고 삶을 내가 스스로 끌고 가고 있다는 주체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내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책임져야 한다. 책임을 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돈을 버는 것이다. 자신의 생계조차 남에게 의존한다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
책임이라는 키워드에서 주체성이라는 또 다른 단어가 나왔다. 책임은 주체성의 전제조건이다.
Q3. 그렇다면 왜 책임지며 주체적으로 살아야 할까?
A3. 자유로운 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자유는 주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돈을 이용해 내 삶에 책임을 지고, 이는 주체성, 더 나아가 자유라는 가치로 이어진다. 세상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더라도 내 두 다리로 온전히 서는 모습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보자.
Q4. 왜 자유롭게 살아야 할까?
A4. 삶의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서.
내게 자유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게 없는 상태'에 가깝다. 비슷한 말이지만 초점이 다르다. 전자가 마음껏 뛰어노는 어린아이의 시선이라면, 후자는 삶의 제약을 하나씩 없애는 모습이다. 제멋대로 살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선택지를 늘려가는 것이다.
Q5. 왜 삶의 선택지를 늘려야 할까?
A5. 충만하게 살기 위해서.
단순히 선택지가 많다고 해서 삶이 충만할리 없다. 한두 가지의 가능성으로도 충분히 알차게 살 수 있다. 운이 아주 좋다면 말이다. 충만함은 내게 맞는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세상에 있는 수만 가지 버튼 중 무엇이 적합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직접 눌러봐야 한다. 그런데 어딘가에 제약이 생겨 건드리지도 못하는 버튼이 있다면 어떨까? 후회와 미련으로 남는다.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경험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다만 삶의 충만함을 찾기 위해서라도 얼마간의 여유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돈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훌륭한 도구다.
마지막 질문이다.
Q6. 왜 충만하게 살아야 할까?
A6. 그게 내가 사는 이유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이유를 행복이라고 말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충만함이다. 행복하지 않아도 인생을 살 수는 있지만 충만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 단단하게 내 안을 채워가는 그 느낌이 없다면 삶은 그저 무색무취의 공허에 불과하다. 삶 그 자체에는 이유가 없다. 다만 사람은 그 빈 공간에 나름의 이유와 의미를 채울 수 있는 존재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그게 삶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하기 위해 산다. 동시에 사랑하려고, 세상을 더 알아가려고, 나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느끼려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