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질수록 가까이, 가까워질수록 멀리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는 빨리 갈수록 더 뒤처지고, 물러서려고 하면 오히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이 등장한다. 주인공 모모는 이런 특성을 이용해 자신을 쫓아오는 악당(시간도둑)을 따돌린다. 바쁘게 살수록 여유로움과 멀어지는 현대사회를 표현한 장면이다.
사랑할 때도 그런 경험을 한다. 접근하면 멀어지고, 약간 거리를 두면 따라오는. 그렇게 완전히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채 관계를 이어간다. 사랑의 생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널 사랑하고 싶은데.
버리면 된다. 기대를. 주로 다음과 같다.
1. 나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다 기억해줄 거라는 기대
2. 매일 밤 나에게 전화해줄 거라는 기대
3.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줄 거라는 기대
4. 우리 사랑은 영원할 거라는 기대
5.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기대
6. 세상 무엇보다 나를 우선할 거라는 기대 등
다툼이 시작되는 건 항상 기대 때문이다. 난 네가 이렇게 해주길 바랐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싸움이 반복되고 서로 지쳐간다. 한쪽이 포기하거나 바뀌거나 둘 중 하나다. 혹은 둘 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헤어지고 만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인데 기대를 안 할 수 있을까? 남도 아니고. 그럴 거면 사랑하는 의미도 없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게 있으니까 관계를 이어가는 건데. 그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해보자. 왜 상대방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걸까? 그 뭔가를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운동하길 '기대'하진 않는다. 대신 운동할 거라고 '확신'한다. 기대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의 마음가짐이다. 복권을 긁으며 당첨되길 기대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담배를 피운다. 그 사람이 금연할 거라고 기대한다. 날 사랑하니까.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금연껌을 사주고, 클리닉에 같이 가자며 팔을 잡아 끈다. 잘 해결이 된다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괴로움이 시작된다. 괴로움을 멈추려면 완전히 내려놓거나 그 사람을 바꿔야 한다. 기대를 버리는 건 내면의 문제고, 타인을 바꾸는 건 외부세계의 문제다. 무엇이 더 쉬울까?
물론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다. 당연히 내 기대에 차지 않는 부분이 있을 거고, 거기에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기대란 완벽을 희망하는 마음이다. 완벽함을 바랄수록 관계는 더 불완전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모든 부족함을 품을 이유는 없다. 나에겐 나 자신을 지킬 의무도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확실한 선을 가지자. 이 선만 넘지 않으면 널 사랑할게. 기대 없이 담백하게. 신념, 가치관, 철학, 뭐라고 불러도 좋다. 곁가지처럼 뻗어 나오는 상대방의 신호에 일일이 반응하지 말고, 중요한 줄기를 보자.
수시로 선을 넘나들며 내 인내심을 시험한다면? 쳐내면 된다. 관계의 시작은 신중하게, 끝은 단호하게.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기대할 필요가 없는 사람도 있었구나. 나에게 매번 확신을 주는 그런 사람도 어딘가에 있구나.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