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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Nov 01. 2023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그제야 삶이 보인다

놀고, 쉬고, 사랑하자

장면 1.

전 회사에서 일할 때다.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던 협력업체 담당자분이 있었다. 프로모션과 관련하여 문의할 게 있어 전화를 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메일도 남겨보고, 문자도 보냈지만 묵묵부답. 바쁜가 보다 하고 며칠을 미뤄두었다. 그러다 해당 업체의 다른 직원 분에게서 연락이 왔다. 담당자가 변경되었다고 한다. 일정도 있고 얼굴도 뵐 겸 회사로 찾아왔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000 차장님은 회사를 그만두신 건가요?"

"아... 그게."


뜸을 들이더니 말한다.


"출장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지금 뇌사상태라고.... 조만간 퇴직 처리 될 겁니다."


간단히 미팅을 끝내고 조용히 전 담당자분의 카톡 프로필을 클릭했다. 딸로 보이는 한 아이가 운동장을 뛰어가는 사진이다.



장면 2.

점심을 먹고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 앞에서 오피스텔을 짓고 있다. 공사하는 소리가 시끄러워 도로 쪽으로 붙어 걸었다.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쾅하고 큰 소리가 난다.


내 왼쪽 5m 정도 거리다. 건물에서 실외기 같은 게 떨어졌다. 안전통로 위에 있던 철제 지붕을 뚫고 땅에 박혀 있다. 그 밑을 걸었다면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 맞았을 것이다. 맞았다면?



장면 3.

해군에서 함정(군함) 근무를 할 때의 일이다. 항해 중에 당직교대를 하러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모든 불이 꺼진다. 뭔가 싶어 멈춰 서있는데 비상등이 들어온다. 뒤에서 함장님이 뛰어 올라온다. 방송이 나온다. 엔진실에 화재가 났다고 한다. 엔진실 바닥에 고여있던 유증기(기름 수증기)에 불이 붙었다.


조금만 더 옆으로 옮겨 붙었다면 엔진이 폭발해서 바다에 수장될 뻔했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진압할 수 있었다. 불이 옮겨 붙었다면? 한밤중에 바다 한가운데서 배가 가라앉았다면?




아침에 한 앵커 분의 비보를 접하고 퍼뜩 든 생각은, 죽음은 어디에나 있으며, 내 곁에도 있었다는 그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다. 죽음을 마주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삶을 떠올린다. 삶의 허망함, 그 옅디 옅은 존재감에 관하여.


요즘엔 30~40대에 요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너무 열심히 일을 하다가 과로 및 여타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지금 당장은 살아있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은 필연적이며 비가역적인 소멸을 향해 달려 나간다지만, 그 이전까지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자기 자신의 죽음을 상상한다는 건 숨 쉬고 있는 동안에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리고 죽은 이후에 죽음을 자각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기에.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는 '살아서는 죽음을 겪을 수 없고, 죽고 나서는 삶을 경험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저 허상임을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죽음이란 거리감 있게 바라보면 한없이 멀리 느껴지지만, 그 소멸의 과정을 '내'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존재에 강하게 흡착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언젠가 죽는 게 다행이다 여기면서도, 막상 죽고 싶지는 않은, 그런 모순적인 존재가 사람인가 보다. 그냥 조만간 맞이할 약간의 휴식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놀고, 쉬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더 집중할 수 있기를. 그래야 언제일지 모를 마지막 순간에도 조금은 더 초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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