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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Nov 05. 2023

최선을 다 하는 게 최선일까

여지 남기기

얼마 전 <블루 자이언트>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재즈계의 슬램덩크'라는 타이틀답게 파이팅 넘치는 주인공들의 열정적인 공연과 연습 장면에 눈과 귀가 즐거운 작품이었다. 주인공은 말한다. "전력으로 전하면 반드시 닿는다"라고. 마치 재즈 연주자가 아니라 폭풍처럼 돌진하는 황소를 보는 느낌이다.


최선. 전력. 악바리 정신.


하나같이 양가감정이 드는 단어들이다. 힘든 일상을 이어가면서도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양심(?)을 콕콕 찌른다.


그게 최선이야? 정말?


최선...이라고 부를 만큼 열심히 살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다만 숨만 쉬더라도 힘든 게 본디 인생이 아니겠는가. 젊은 사람도 과로로 요절하는 세상에서 최선을 다했다가는 더 일찍 피안으로 여행을 떠날듯한 찝찝한 기분이 든다. 나, 최선을 다 해도 되는 걸까?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유시민 작가가 "나는 절대 최선을 다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을 이들이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항상 남겨둔다'는 단서가 달려 있는 문장이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이 특별히 없을 때에는 최대한 누워 있는다든지, 내 능력을 넘는 일은 맡지 않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사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다는 건 노예의 미덕이었다. 적어도 중세까지는 그랬다. 귀족계급은 귀찮은 노동을 하층계급에 맡기고 철학이나 예술, 음주가무와 여행을 즐겼다. 그러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관이 중세를 휩쓸면서 열심히 산다는 것, 특히 돈을 많이 버는 행위가 삶의 중심으로 올라오게 된다.


이젠 자신이 믿고 원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현대사회가 아니던가. 최선을 다 해도, 최선을 다 하지 않아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그래서 더 무섭기도 하다.


너무 최선을 다 하지는 말자고, 항상 여지를 남겨두자고 다짐한다. 최선을 다 해, 최선을 다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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