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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Mar 25. 2024

세상이 아무리 빨리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에 대해 물어야 한다.

모든 것이 변화할 것이라고, 어제의 꽃은 그대로 시들어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더 그렇다. 그런가? 사실 그렇지는 않다. 기억을 조금만 더듬어보면 급진적인 변화의 시대를 말한 사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종말 예언 같은 극단적인 사례만 들어도 한 가득이다. 마야인의 달력은 2012년에 멈춰있다는 둥, 노스트라다무스가 핵전쟁을 예고했다는 둥. 심지어 사이비 종교에 속아 천국 갈 날짜만 받아놓고 기다렸던 신자들도 있다.


사람은 불확실성 앞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뭔가 모를 미지의 존재가 미래에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감에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서 사주나 타로 같은 영역에서부터, 데이터 분석이나 트렌드 예측 같은 일견 과학적인 접근방식까지, 미래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요즘 들어서 드는 생각은 이거다. 트렌드 예측이 서술하는 건 미래가 아니라 현재라고. 나 역시 졸저 <MZ세대 수난기>에서 [미래인간의 일]이라는 소제목으로 어설픈 추측을 해보았지만 이 역시 현재가 치달아갈 필연적 미래에 대한 서술에 지나지 않았다. 추론에 따른 합리적 결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미래'를 예측할 데이터는 오로지 과거, 그리고 현재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시점이 뒤로 멀어질수록 과거와 현재의 영향력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너무 먼 미래를 예측한 이들은 너무나도 큰 오차범위 내에서 다트를 던지는 셈이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이나 트렌드 독해에 능한 이들은 대중보다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예측을 내놓는다. 정량적이든 정성적이든 주변의 정보를 한껏 흡수해 뱉어내는 결과물이다. 그만한 도구와 센스를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도리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 묻게 된다. 변하는 것만 바라보며 미래의 계획을 짠다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 자칫 유행만 좇다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인 이상 그 자리에 남아있을 것에 대해 자문해 보자. 대표적으로는 욕망이 있다. 욕망의 대상은 시대에 따라 양태를 바꿀지언정 근본적으로는 거의 유사하다. 인간은 무엇에건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욕망한다. 튤립이든 금이든 후추든 코카콜라병이든 스포츠카든 돈이든 노벨상이든.


또 인간은 실수하고, 후회하고, 우울했다가도 희망을 찾고,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고, 집착하고, 허무감에 빠졌다가,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고, 무지의 원을 넓혀나가며, 자신보다 큰 존재를 믿고 불신하며, 대립과 화합을 이어나가고,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 모든 과정을 평생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과거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또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자각을 하며,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인간에 대한, 자신의 대한 이해다.


정말로 변하지 않을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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