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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25. 2024

코스트코 바이어로 3년간 일하며 배운 10가지 (2)

바이어, MD, 혹은 유통업을 지망하는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

*1부를 보지 못한 분들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시면 좋습니다. 3년 간 코스트코 바이어로 일하며 배운 인사이트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다니고 있지 않은 회사입니다)


코스트코 바이어로 3년간 일하며 배운 10가지 - 1부


<Contents>


[1부]

1. 바이어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다양하다

2. 유통 = 연결 / 바이어 = 더 많은 연결

3. 바이어의 역량은 결국 소싱(Sourcing) 능력

4. 더 중요한 건 유통회사의 소싱 능력


[2부]

5. 재고관리,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

6. 재고를 널뛰게 하는 사회적 이슈

7. 상품 마진 외에 수익을 올리는 방법

8. 공급가 인하 외에 비용을 줄이는 방법

9.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

10. (뻔한 소리지만)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5. 재고관리,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


유통업체 바이어라고 하면 대단해 보이는 면도 있겠지만 (아닌가?) 사원 단계에서는 재고관리가 주 업무다. 각 매장의 판매량을 보고 적절한 수량을 항상 유지해야 하는데, 항상 이 '적절함'이 문제가 된다. 어느 정도 수준이 적정한 재고일까? 정답은 없다. 다만 지나치게 많이 발주를 하여 매장 담당자의 원성을 사거나, 반대로 너무 적게 재고를 유지해 품절이라도 내는 날에는 철퇴를 맞곤 했다.


게다가 매장에 재고를 채워 넣는 발주는 곧 협력업체 영업 담당자의 실적으로 이어지기에 아주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는 변덕을 부려 마구 재고를 쌓아두다가 그 이후 깜깜무소식이라면 같이 일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도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소량을 자주 발주하면 고스란히 협력업체 측의 물류비용으로 이어지니 그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가격 할인 등의 프로모션 기간 동안에는 항상 긴장하며 적정재고를 유지해야 한다. 평소보다 상품이 판매되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한창 신나게 물건을 팔고 있는데 품절이라도 되는 날에는 회사의 손해로 이어지니 어려운 노릇이다. 명절 선물세트나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처럼 특정 시즌에만 팔아야 하는 상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정 시기를 조금만 지나도 반품이나 폐기 처분을 해야 하기에.


실무에서는 평소 판매량을 고려하여 대략 4주 치의 재고를 매장마다 두었고, 특별 프로모션이 있는 주간에는 지난번에 실시한 행사 기간 동안의 매출 상황을 보고 발주량을 결정했다. 매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요일별로, 날씨별로, 또 공휴일 여부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곤 했다. 비식품 상품의 경우에는 소비기한이 길어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식품 팀에 있는 동기들은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다.



6. 재고를 널뛰게 하는 사회적 이슈


그 외에도 특정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상품 판매량이 급증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겪은 사례가 소위 '수돗물 유충 발생 사건'이다. 수돗물에서 벌레 유충 같은 이물질이 나온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등장하자 사람들이 필터 샤워기를 급하게 찾았다. 당시 몸 담고 있던 생활용품 팀에서 팔고 있던 상품이었는데 매장에 쌓여있던 재고가 순식간에 다 판매되었다. 회사 입장에서야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발발하고 마스크 수요가 급등했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마스크 가격을 올리는 꼼수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절대적인 재고량이 부족해 번호표까지 나눠주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러고도 마스크를 사려는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외에도 특정 상품이 미디어에서 대서특필되거나, 인기상품의 수입 판로를 뚫어 독점적으로 판매하거나 하는 등 여러 케이스가 있다. 하다못해 포켓몬빵이 한창 인기였을 때, 들여놓는 족족 다 팔렸다는 후문을 듣기도 했다.


사실 어떤 상품이 이렇게 대박이 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저 미리 대비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떤 상품이든 일시적으로 수요가 폭발하는 경우에는 관심이 식는 속도도 그만큼 빠르다. 그래서 지나치게 재고 수준을 높여 놓았다가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만 보면 '인기 대 폭발' 상품이 이득인 것 같지만 실상은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매출 차원에서는 더 큰 도움이 된다. 운이 꾸준히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은 실적이 하락하기 때문이다.



7. 상품 마진 외에 수익을 올리는 방법


유통업체의 주 수입원은 유통, 혹은 상품 마진이다. 다만 그 외에도 여러 쏠쏠한(?) 대안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위 '자릿세'이다. 서점도 마찬가지이지만 대형마트에도 더 좋은 자리가 있다. 고객들이 주로 다니는 통로라든지, 매장 입구라든지, 혹은 화려하게 꾸민 특별 매대라든지. 이런 곳에 자리하면 아무래도 소비자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판매량도 오르게 된다. 매장에서 판단하여 자체적으로 배치를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협력업체에게서 추가적인 비용을 받고 좋은 자리에 배치하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몰 홈페이지에 있는 배너 광고나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배치된 라이트 박스도 마찬가지다. 그냥 상품이나 브랜드를 홍보해 주는 경우는 없다. 다 수수료를 받고 진행하는 광고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광고비나 자릿세를 받으면 매출도 상승하고, 그 자체로 마진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된다.


특히 코스트코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멤버십 수익을 통해 낮은 상품 가격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코스트코가 독특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미국 현지에서는 '싸고 저렴한 대형마트'의 느낌이 강하다면, 한국에서는 '특별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물론 지금 와서는 옛말이 되었지만 초기 비즈니스 전개 단계에서는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이 주요하지 않았나 싶다. 까르푸나 월마트 같은 해외 유통업체들이 고전을 거듭하다 철수한 것을 보면 말이다.



8. 공급가 인하 외에 비용을 줄이는 방법


유통업의 본질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에 있다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은 공급가를 낮추는 것이다. 코스트코의 경우 구매력이 바탕이 되어 있기에 공급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무작정 싸게만 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협력업체 역시 마진을 남기려고 하는 이해당사자이고, 그 협력업체에 얽혀있는 다른 업체들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실무에서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포장 단위를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건전지 10개를 묶어 3,000원에 (개당 300원) 공급받았다면, 이후에는 20개를 묶어 5,000원에 (개당 250원) 받는 식이다. 그래서 코스트코 매장을 가면 대용량 상품이 주를 이룬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사면 수량 할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외에도 협력업체와 부단하게 소통하여 포장방법을 개선하거나, 저렴한 원료를 사용하거나 하는 식의 방안도 있으나 경우 품질이 저하될 있다는 단점이 있다.



9.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


파레토 법칙을 유통업에 적용하면 '매출 상위 20%의 상품이 80%의 수익을 낸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어느 카테고리나 베스트셀러가 있고, 실제로 상위 몇 개 상품의 매출이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회사를 다닐 당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양념 소불고기'였는데, 이 한 상품의 매출이 웬만한 비식품 팀 전체의 매출과 맞먹을 정도였다.


코스트코의 경우 이 파레토 법칙을 적극적으로 차용하여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한 카테고리에 100가지의 상품이 있다면 그중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아이템만 들여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일 잘 팔리는 상품만 가져다 놓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상품 구색, 그리고 롱테일 법칙 때문이다.


오로지 하나의 상품만 사러 매장을 찾는 고객은 드물다. 설령 '이러이러한 물건을 사야지'하고 오프라인 점포를 방문했더라도 여러 재밌는 아이템에 마음을 빼앗기는 경우도 충분히 생길 수 있다. 오프라인은 소비자에게 상품뿐 아니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경험은 여러 층위에서 전개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상품 구색으로 구현될 수 있다.


게다가 온라인 판매처의 등장으로 '매출이 낮은 상품도 소비자에게 발견될 수 있다'는 롱테일 법칙이 힘을 얻고 있다. 비중으로만 보면 작을지 몰라도 다양한 상품을 가져다 두는 게 도움이 되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비단 매출의 문제를 떠나서 브랜드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검색하는 상품마다 품절이거나 혹은 애초에 없다면 소비자는 발길을 돌리게 된다.



10. (뻔한 소리지만)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유통업 바이어는 자칫 잘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기 십상인 직군이다.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제품을 소싱하여 판매하는 직업이기에 전문성이 싹트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 협력업체와의 갑을관계 역시 독이 될 때가 있다. 가만히 앉아 요청하면 웬만한 걸 다 들어주기에 크게 노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재촉하고 요구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지만, 그 능력은 회사라는 배경이 있기에 발현되는 것이지 자신의 고유함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더욱 심미안을 의도적으로 갈고닦아야 한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좋은 상품을 발굴하고, 효율적인 판매 방안을 찾고, 다른 팀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하는 식으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자신만의 무기를 갖고 있는 사람은 빛이 난다. 누군가는 실수 없이 일을 처리하고, 누군가는 트렌디한 상품을 잘 소싱하고, 누군가는 인간관계를 잘 쌓아 문제를 술술 해결한다. 이는 바이어를 넘어 모든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자질이다.


가장 좋은 건 회사가 구성원의 능력을 함양할 수 있게끔 밀어주는 사내 문화를 갖추는 것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개개인이 나서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회사 안이든 밖이든 마찬가지다. 인플루언서 무빙워터 씨가 말했듯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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