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MD, 혹은 유통업을 지망하는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
난 3년간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 한국 본사에서 바이어(Buyer)로 일해왔다. (약 2년 전 퇴사를 했다) 굳이 회사를 특정한 건 '나 이런 회사 다녔소'하고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환경 속에서 일을 했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위해서다.
백화점이나 편의점은 물론이고 같은 대형마트인 이마트나 트레이더스,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소셜 커머스를 넘어 유통 공룡으로 거듭난 쿠팡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같은 산업적 토양을 공유하고 있기에 겹치는 점도 많을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회사에 발을 담그며 배운 여러 인사이트를 늦게나마 정리한다. 유통업체 바이어나 MD를 꿈꾸고 있다면, 혹은 그냥 코스트코라는 회사에서는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고작 3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루만 발을 담가봤어도 썰을 풀 수 있는 게 사람 아니던가.
<Contents>
[1부]
1. 바이어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다양하다
2. 유통 = 연결 / 바이어 = 더 많은 연결
3. 바이어의 역량은 결국 소싱(Sourcing) 능력
4. 더 중요한 건 유통회사의 소싱 능력
[2부]
5. 재고관리,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
6. 재고를 널뛰게 하는 사회적 이슈
7. 상품 마진 외에 수익을 올리는 방법
8. 공급가 인하 외에 비용을 줄이는 방법
9. 파레토 법칙과 롱테일 법칙
10. (뻔한 소리지만)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1. 바이어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정말 다양하다
바이어(Buyer)는 문자 그대로 무언가를 사는(Buy) 사람이지만 하는 일이 구매 업무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상품을 둘러싼 '전반적인'(무서운 단어다)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직업군이다. 제조업을 영위하는 기업에서의 구매 직군과는 결을 달리한다.
상품을 소싱(Sourcing)하고, 협력업체 영업팀과 소통하고, 매장 진열 상태를 체크하고,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각종 수입통관 서류를 처리하고, 재고를 관리하고, 클레임을 해결하고, 샘플 상품 테스트를 의뢰하고, 그 외에 수많은 서류와 전산 프로그램, 엑셀 시트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코스트코의 경우에는 매입팀(Buying)이 상품과 관련한 업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업무의 파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능력,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쳐내는 능력이 중요했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는다는 느낌보다는 유통과 관련한 넓은 범주의 업무를 두루두루 처리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상품, 또 상품이다.
2. 유통 = 연결 / 바이어 = 더 많은 연결
유통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생산자가 직거래로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중간에 유통업체를 거치게 된다. 유통업자는 유통을 대리함으로써 유통 마진(Margin)을 챙긴다. 거칠게 말하면 유통은 곧 연결이다. 그리고 바이어는 유통업의 중심에서 또 다른 연결점 역할을 한다. 일종의 허브(Hub)랄까.
실무를 할 당시에 업무시간의 절반은 전산과 서류에, 나머지 절반은 이메일과 전화에 할애할 정도로 소통을 자주 해야 했다. 상품을 가지고 있는 협력업체 담당자(영업팀이나 기업 대표), 재고를 이동시키는 물류센터 담당자, 전국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 담당자, 수입상품을 관리하는 통관팀과 관세법인 담당자, 상품 테스트를 진행하는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담당자, 각종 등록 및 재무서류를 관리하는 재경팀 담당자, 클레임을 최전선에서 받아내는 콜센터 담당자, 프로모션 및 디자인을 맡고 있는 마케팅 담당자, 온라인 판매망의 이커머스(e-commerce) 담당자, 코스트코 미국 본사 담당자 등등.... 심지어 고객의 전화를 직접 받아 문제를 해결해 준 기억도 있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이들과 업무를 조율하고 때로는 싸워야 한다. 특히 협력업체와는 유통업 특성상 갑을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갑인 유통업체 바이어의 지위만 믿고 강제로 밀어붙인다면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 모든 산업이 그렇겠지만 특히 유통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진다.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는 꼭 필요하다.
3. 바이어의 역량은 결국 소싱(Sourcing) 능력
유통업의 기본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즉 들여오는 공급가를 최대한 낮추고, 이를 일정한 가격에 판매하여 마진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다만 코스트코의 경우 최대 15%로 마진율이 정해져 있어 공급가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기본적으로 대용량 묶음 상품을 팔다 보니 공급가 협상에 유리한 면이 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재고를 빠르게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는 것이다.
이런 환경 내에서 바이어는 항상 시장에 관심을 두고 팔릴만한 상품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협력업체 영업 담당자가 미팅을 통해 신제품을 제안하지만, 이게 좋은 상품인지 아니면 (나쁘게 말하면) 재고 떨이를 하려고 넘기는 상품인지 구분해야 한다. 또 역으로 이러이러한 제품이 있는지 협력업체 측에 문의를 할 수도 있고, 아예 새로운 업체에 연락해 좋은 상품을 들여올 수도 있다.
유통업의 본질은 상품에 있고 상품의 품질, 가격, 적정재고, 들여오는 타이밍 등을 잘 조율하여 고객에게 전달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코스트코 정도면 그냥 물건을 진열해도 쉽게 팔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고객이 찾지 않는 상품은 매장에서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기 십상이고, 이런 상품은 가격 할인을 통해 재고를 빨리 빼내야 한다. 특히 시즌성 상품이거나 상품의 소비기한이 정해져 있다면 마음이 더 급해진다. 하다 하다 안 되면 폐기를 하거나 재판매 업자에게 염가로 넘기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회사의 손해로 이어진다.
4. 더 중요한 건 유통회사의 소싱 능력
사실 바이어의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전사적인 구매력이 꼭 필요하다. 회사의 소싱 능력이 너무 미미하다면 많은 물건을 들여올 수도 없고,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도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 유통업체에 재고를 배분하는 게 부담이다. 실제로 코스트코가 프라이스 클럽으로 처음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소위 '잘 나가는' 제품을 받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사실 코스트코가 유수의 국내 대기업 및 중견기업에 비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 유리한 건 글로벌 소싱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있는 코스트코 매장에서 공동으로 구매하는 상품이 있기에 단가 책정과 구매력 면에서 비교가 어려울 만큼 유리하다. 또 실무적으로는 미국 본사에서 정해주는 대로 진행하니 상품 소싱도 수월하다. 그럼에도 바이어의 안목이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를 다닐 당시 팀을 2번이나 옮겼는데 옮길 때마다 매출이 거의 10배씩 상승했다. 나중에는 연봉을 아득히 상회하는 금액의 재고를 내가 혼자 발주해도 되는 건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본사에서 전국에 있는 매장과 온라인 샵까지 관리를 했다. 마지막 팀에서는 하루에도 매출이 몇억 원씩 나오는 화장품 파트를 담당했는데 제품이 쑥쑥 팔려가는 걸 보고 코스트코의 브랜드 파워를 실감했다. 만약 식품 파트를 맡았다면 그보다 훨씬 큰 단위를 경험할 수 있었으리라. 대형마트 특성상 식품 부문의 매출이 비식품보다 높기 때문이다.
*내용이 길어져서 남은 파트는 2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