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을 하고 옳게 만들기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옳게 만든다
박웅현 작가의 한 책에서 나온 이 표현은 요즘 들어 내 마음을 가장 가볍게 만들어준다. 모든 결정과 선택은 분명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후회와 회한에 젖어 자신을 탓할 일은 적지 않을까. 어떤 결정이든 스스로 책임지고,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 깃발을 꽂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모든 선택의 분기점에는 장단점이 있고,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저 믿고 고를 뿐이다.
정말 최악의 선택이기에 되돌릴 수 없는 경우도 있을 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깊은 상흔을 삶에 남길 수도 있다. 이런 현실 앞에서는 차라리 운명론자가 되는 게 나을지 모른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수용이라며 위로하는 게 최선일지 모른다. 1) 인생에 정답은 없다. 2)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이 두 문장만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이진 않다. 절대적이라는 믿음만이 있을 뿐이고, 그 절대성에 관한 믿음은 수시로 박살 난다.
반대로 절대성이 없는 세상이기에 도리어 자유를 얻기도 한다. 어떤 결정이든 옳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래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 결과로 증명하면 그만이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과정을 즐기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매번 최선을 다 하지 않아도 된다. 에너지와 시간과 체력은 한정적이므로. '최선'이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신성시할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선택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최선이란 그 이후에 당연하게도 실천해야 하는 루틴의 이미지에 가깝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매번 돌아가게 되는, 중력처럼 시간을 빨아들이는, 내 존재의 윤곽선을 더 진하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