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은 연상을, 남성은 연하를 원하는가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2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회원 내 성혼 커플 중 소위 말하는 '연상연하'(남성보다 여성의 나이가 더 많은)의 비율은 전체의 5.2% 정도라고 한다. 동갑인 부부는 8.7%니 나머지 80% 이상이 남성이 더 나이가 많은 커플이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나 싶어 통계청 자료를 찾아보니 연상연하 부부는 전체의 19.4%다. 전자의 경우 결혼정보회사 특유의 상황이 반영된 통계치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남성이 더 나이가 많은 부부가 다수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짐작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연상연하 커플이다. 혼인 과정에서 뭔가 편견에 시달린 극적인 에피소드가 하나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실은 그런 적이 없다. 굳이 하나 집어내자면 친구에게 '그래, 네가 연하를 감내할 수 있겠니'하고 묘한 말을 들었다는 것 정도. 이것도 당사자인 내가 수긍했으니, 그만큼 아무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연애 경험 안에서 연하인 여성을 사귀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연하가 어쩌고, 연상이 어쩌고 하고 나누기에는 경험치가 부족할 수밖에. 다만 왜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연하를 선호하는지, 반대로 여성은 연상을 선호하는지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세치 키보드를 놀려보련다.
실은 얼마 전 아내와 얼음 생맥주를 마시며 나왔던 이야기다. "남자들은 어리고 예쁜 여자를 좋아하지?" 정도의 질문이었는데, 곧바로 했던 대답은 "대부분은 그렇다"였다. 유치하게나마 비교를 하자면 '키 크고 몸 좋고 잘생기고 능력 있고 다정한 남자'를 여성 버전으로 떠올려보면 쉽지 않을까 싶다.
그럼 남자는 왜 연하를 선호할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일차원적인 대답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뇌가 형성되어 있으니까'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유전자가 어쩌고, 번식의 본능이 어쩌고 하는. 하지만 이 정도 맥락으로는 딩크족이나 연애만 이어가는 커플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사회적 인정이라는 맥락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나 싶다.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사회적인 시선 속에서 '연하'와 사귀는 행위 자체가 더 높은 인정을 받는 건 사실이니까. 이는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아내도 연하의 남자친구를 사귄다고 하니 '너 능력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다만 '능력 있다'는 저 문장은 남녀에게 다소 다른 의미를 갖는다. 거칠게 나누자면 다음과 같다.
남성의 경우: "(저렇게 예쁘고 어린 파트너를 사귀다니) 너 능력 있다."
여성의 경우: "(남성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을 포기하다니) 너 능력 있다."
자연스레 여성이 연상을 선호하는 이유도 드러난다. 물론 연상이 가진(또는 가졌으리라 짐작하는) 특유의 안정감이나 포용성도 중요한 요소지만, 경제적인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드라마에서 보는 재벌 3세 같은 부유함은 아니더라도 '나보다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은근한 기대감을 갖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현실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하게 흘러간다.
생맥주 집에서의 대화는 "왜 능력 있고 예쁜 내 친구들은 결혼을 하지 못하는가?"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눈이 높아서'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보다 학력도, 연봉도 낮은 남자친구들이 하나같이 자격지심을 느끼며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능력 좋은 연상을 사귀자니 그들은 예쁘고 어린 여성만 찾더라는 거다.
30대 여성이 겪게 되는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다. 눈을 낮춰도, 높여도 맞는 파트너를 찾기 어렵다. 결혼 생각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고려를 하고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만 보면 남성들은 '자신보다 능력은 없지만 어리고 예쁜 여성'을 찾는 것 같다. 여기에서 앞서 언급한 사회적 인정의 두 번째 측면이 드러난다. 바로 자신의 파트너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흔히 여성은 사랑을, 남성은 인정을 갈구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인정이라는 게 참 오묘하다. 남성이 파트너에게 원하는 인정은 상사에게서 받는 것("자네, 능력 있구먼")보다는 후배에게 받는 것("선배, 정말 멋져요!")에 가깝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파트너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자기보다 능력 있는 여성 파트너에게는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 <인턴>에도 패션 회사 CEO인 앤 해서웨이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전업주부 남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가정에서 느끼는 열등감과 인정 부족이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물론 거꾸로 매달아 곤장을 쳐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능력 있는 여성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지만 남자라는 생물이 그렇다.
이렇게만 끝내면 마치 생물학적 결정론이 커플 세계를 지배하는 것 같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설령 인정을 바라고 '나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연하를 사귀더라도, 사랑과 보호를 바라고 '나보다 능력 있는' 연상을 만나더라도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만 바라고 누군가를 만난다면 바라던 결혼 생활에서는 크게 멀어지게 된다. 조건부 관계로 변질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면서 조건을 따지는 것에는 별 문제가 없다. 다만 그 조건이 변화했을 때 문제가 터져 나온다. 마냥 어리던 아내도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 잘 나가던 남편도 퇴직하는 순간이 온다. 그럼 더 예쁘고 어린 여성이, 더 다정하고 돈 많은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최소한 상대적으로 비교를 하게 된다. 그렇게 따지고 따져서 결혼하더라도 더 잘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래서 진정 따져야 하는 건 나의 마음이다. 모든 조건이 벗겨지고 남는 건 마음뿐이다. 서로에 대한 마음, 자신에 대한 마음. 부처가 태어나자마자 외쳤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저 문장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오로지 마음만이 남는다는 단단한 진실을 드러낸다. 변할 것은 변하고, 남을 것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