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몸을 조종하는 제3의 존재가 나타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3 body problem)에는 인류의 오랜 난제였던 일명 '삼체문제'가 메인 모티프로 등장한다. 작중 배경이 되는 소위 '삼체 행성'은 세 개의 항성 근처에 위치한다. 이 세 별은 상호 간에 중력을 주거니 받거니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행성과 밀당을 한다. 덕분에 삼체 행성에 사는 삼체인은 살맛 나는 항세기와 죽을 맛으로 가득한 난세기를 번갈아 겪게 된다. 처음에는 머리를 굴려서 항세기와 난세기의 주기를 예측해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세 개의 물체가 서로 주고받는 영향력은 계산할 수 없다는 삼체문제의 결론 때문이다.
여성과 여생을 함께하려는 남성은 오로지 둘 사이의 문제만 신경 쓰면 된다는 순진한 마음을 품고 결혼생활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된다. 제3의 존재가 아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걸. 그 존재는 약 한 달을 주기로 세상 밖에 나오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다양한 행동 패턴을 보이곤 한다. 한동안은 다량의 떡볶이와 닭강정을 탐닉하기도 하고, 갑자기 끼니를 거부하고 절전 모드에 돌입하기도 한다. 한없이 예민해져 조신하지 못한 남편의 행실을 쥐 잡듯 들춰내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에 부처의 미소를 보이기도 한다. 이 혼돈의 단짠단짠 앞에서 남성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짝 몸을 낮추게 되는데, 이를 난세기(亂世記)라 부른다.
하지만 어찌 눈보라 치는 겨울만이 계속되겠는가. 그렇게 버티며 살아내다 보면 내가 알던 아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예상한 만큼의 애정과, 예상한 만큼의 잔소리와, 예상한 만큼의 먹성을 보이는 이 시기를 항세기(恒世紀)라 부른다. 남편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지만 어쩌겠는가. 삼체문제는 인류(와 삼체인)가 풀지 못한 난제인 것을. 어쩌면 '여자 마음은 여자도 모른다'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가정의 평화는 이 난세기를 어떻게 넘기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에게 더 많은 인내심과 이해심을 바라는 건 욕심일 수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게 최선일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칼로 물 베기가 될지, 고압수로 칼베기가 될지는 결국 남편 하기에 달렸다.
난세기는 보통 징조 없이 찾아온다. 천사가 나팔을 불고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진다든지, 거대한 싱크홀이 시내 곳곳에 생긴다든지, 까마귀와 다람쥐가 공중재비를 넘는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말이다. 남편들이여, 우선 모든 논리를 내려놓자. 난세기에 나누는 대화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아니라, 폭탄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의 불꽃놀이에 가깝다. 불꽃놀이는 하늘을 향해 산화하기 마련이고, 금방 끝난다. 적어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
신뢰와 연민, 그리고 약간의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이것만이 난세기를 버텨낼 힘을 준다. 아, 결혼이 이토록 힘든 일이었던가, 하고 탄식을 내지를 이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원래 결혼은 힘든 과정이다. 27년 간의 투옥 생활도 버텨냈던 넬슨 만델라도 출소 후 6개월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지 않은가. 소크라테스를 성인 반열에 올렸던(?) 크산티페와의 결혼생활은 어떠한가. 아내 왈,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