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이 타이밍에 등장하는 것이 역시 진리의 '케바케, 사바사'다. 일견 무책임하게 들리는 저 단어 안에 얼마나 많은 진리가 담겨 있는가. 높은 수준의 자기 객관화와 세상의 기준에 맞춰나가는 부단한 성찰을 함의하고 있기에. 즉 동서고금을 통틀어 사골처럼 우려먹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이랑 결혼해야 할까?'라는 의문은 '결혼생활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로 치환할 수 있다. 만약 경제적인 안정성이 중요하다면 그러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파트너를,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하다면 그런 사람을 고르면 된다. 하지만 현실이 어찌 그리 단순하겠는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 모든 기대와 욕망을 상대방에게 투영한다면 동화에나 나올법한 이상적인 인간상만이 좁은 길목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나 붙잡고 결혼을 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상대방에게 완벽함을 바란다면 그 또한 지나친 욕심이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결점 투성이의 인간이니까. 그래서 현실적인 수준에서 자신의 기대치를 조절해야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결연한 각오로 파랑새를 찾겠다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여기까지가 교과서적인 답변이라면, 보다 피부에 와닿는 조언은 없을까? '내가 감내할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든지, '힘들 때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 정도의 기준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가진 사람'을 꼽고 싶다.
사실 이건 김훈 선생님의 조언인데 워낙 와닿아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 연민. 얼핏 결혼과는 결이 맞지 않는 단어로 보인다. 하지만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만이 상대방을 품을 수 있게 해 준다는 걸.
사랑, 신뢰, 의무, 책임 같이 무거운 단어로만 결혼생활을 바라본다면 한없이 기준이 높아져버린다. 기준이 높다면 지속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하루이틀 같이 살다가 말게 아니라면 가족이 되어 내 곁에 한정 없이 머무르는 상대방을 연민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다 분노와 짜증이 밀려오고, 이내 관계가 새카맣게 타버릴 수 있다.
사랑은 결혼을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지만, 연민은 그 불꽃을 이어주는 장작과도 같다. 부부는 사랑을 하는 연인이기도 하지만, 같이 살아가는 가족이자, 생활을 공유하는 동거인이다. 무엇보다 어느 순간에나 서로의 편이 되어야 하는 동지이다. 그저 있음으로 충분해야 할, 인생의 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