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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Aug 05. 2024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아내의 하루

소소한 일상의 장면

[장면 1]


"어느 길로 가야 하지?"

잠시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내가 오른쪽을 가리킨다. 그럼 난 왼쪽을 바라본다. 반대로 가면 맞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면 2]


운전을 할 때도 정신 차려야 한다. 옆에서 인간 내비게이션이 "지금 들어가야지!"하고 다급하게 말해도 침착해야 한다. 아내는 회전 교차로에서 역주행을 한 전적이 있다. 일본이었다면 괜찮았을 거라고 놀렸다가 맞을 뻔했다. 방지턱을 거칠게 넘다가 일행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힌 적도 있다. 꼭 모든 사람이 운전을 할 필요는 없다.



[장면 3]


자다가 한기가 들어서 눈을 떠보니 아내가 이불 2개를 전부 둘둘 말아 튀김옷처럼 두르고 있다. 조금 당겨봤지만 어림도 없다. 그 뒤로는 예비 이불을 침대 밑에 두고 잔다.



[장면 4]


불면에 시달리던 날, 옆에서 쿨쿨 잘만 자는 남편을 보고 화가 치솟았다고 한다. 뭐 맛있는 걸 먹는지 입맛까지 다셔가면서. 어쩐지 그날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꾼 것만 같다.



[장면 5]


아내가 냄비 불을 켜두고 나갔다가 황급히 돌아와 껐다고 한다. 연기도 자욱하고 검댕이 들러붙은 바닥을 긁어내느라고 고생을 했단다. 문득 장모님이 불을 낼 뻔해서 가스배관에 타이머를 설치했던 장인어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조용히 타이머 콘센트를 사서 인덕션에 연결했다. 유전자의 무서움을 느끼면서.



[장면 6]


정신없는 아침, 장모님은 아내의 남동생(나에게는 처남)을 태우고 출발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처남이 짐을 챙겨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이미 차는 떠난 뒤였다. 잠시 후 돌아온 장모님은 "왜 차 안 탔어!"하고 호통을 쳤다. 아내의 이모, 즉 장모님의 자매들도 한 번씩 자식을 두고 출발했던 전적이 있었다. 역사는 흐른다.



[장면 7]


아내는 후식을 좋아한다. 밥을 맛있게 먹었으면 단 음식으로 눌러줘야 하고, 단 음식을 다시 커피로 누르고, 커피를 먹었으니 과일로 눌러주고.... 사람의 위장 구조가 정말 저렇게 되어 있는 건지 의구심을 품을 때쯤 이미 어디선가 주섬주섬 과자 한 봉지를 챙겨 온다. 내가 할 말이 많은 눈빛으로 쳐다보면 홱 하고 돌아서서 봉지를 뜯는다. 이 대목을 쓰고 있는데 케이크 한 조각이 먹고 싶다고 말한다. 이 카페는 당근 케이크가 맛있다면서. 동그랗게 뜬 두 눈을 보니 주문할 기세다.



[장면 8]


아내는 말한다. 자기는 단 음식을 안 좋아한다고. 대신 프랑스산 동물성 크림이랑 네덜란드산 버터와 제주도 구좌읍에서 뽑아 올린 당근을 좋아할 뿐이라고. 당근 케이크가 참 달고 맛있다.



[장면 9]


고등학교 시절, 전교 회장이었던 아내는 팔자에도 없는 해병대 (리더십) 캠프에 끌려갔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갔던 캠프였으니 처음에는 조교 오빠들과의 해변 데이트를 상상했지만, 곧 갯벌에서 고무보트를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웬만한 군인보다도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던 아내에게 명예 군필의 영예가 있기를.



[장면 10]


우리 부부는 둘 다 딸을 원한다. 아내의 걱정은 단 하나, 딸의 사춘기와 자신의 갱년기가 겹쳤을 때라고 한다. 두 호르몬의 충돌 가운데에서 연약한 남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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