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당연한 일이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세상은 나에게 '취준생'이라는 또 하나의 타이틀을 붙였다. 아직 나는 어디로 갈지도 모르겠는데. 취직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온갖 조언과 정보가 넘쳐난다. 오히려 많아서 문제다.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취업설명회, 취업특강 팸플릿을 주섬주섬 챙긴다. 취업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블로그 포스팅도 챙겨본다.
하반기 공채 시즌이 시작이니 얼른 자소서, 인적성, 면접을 준비하란다. 캘린더에 하나하나 표시를 해가며 지원에 열을 올렸다. 수업은 마지막 학기라 널널했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취업이 안되면 졸업을 미뤄야 하나? 계속 백수로 살아야 하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이놈의 취직이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괴롭히나. 대기업 공채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외국계 기업과 중견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한 회사에 운 좋게 붙어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취업의 어려움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이후에 펼쳐진다.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던 곳. 그 선택의 대가는 컸다. 안정적인 회사지만 뭔가 모를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해온다. 버티면, 그저 버티면 나도 저 상사처럼 되는 건가? 조직 내에서 딱히 롤 모델이라고 할만한 사람도, 가슴 뛰는 비전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 자연스레 딴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준비한다든지. 입버릇처럼 '퇴사할 거야, 다른 회사로 이직할 거야'를 떠들고 다니다 문득 아찔해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가고 싶은 회사가 없다. 세상에 완벽한 회사는 없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나? 물론 이른바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은 있다. 하지만 그조차도 단점이 뚜렷하거나, 내가 갈 수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대개는 둘 다 였고.
너무 불평불만이 많은 건가 싶기도 하다.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뭔가 잘못되었다. 만약 상사가 문제라면 부서를 옮기면 된다. 조직이 문제라면 회사를 옮기면 된다.
그보다 더 넓은 차원의 문제라면 어떨까? 조금 더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꼭 회사를 다녀야 하나?'식의 질문 말이다. 생각해보면, 일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다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마치 암흑 지대와 같다.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곳. 저기 가면 패가망신한다는 소문만이 무성하다.
나 역시 그 소문을 믿었다. 더 중요한 건 회사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넌 갈 데도 없지? 내 명령에 충실히 따라야 할 것이야. 너의 시간도, 에너지도, 신념도, 자유도 내가 사겠어. 매달 주는 월급으로 말이야. 열심히 노력해봐. 운이 좋으면 승진할 거고, 더 많은 돈을 받게 되겠지. 어깨도 나름 으쓱해지고 말이야. 하지만 언젠가 나는 너를 내칠 거야. 그 이후의 일은, 네가 알아서 잘하리라 믿어.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의존하면 편하다. 하지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아가는 건 회사라는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내가 일한 양보다 적은 몫을 받아간다. 항상 그렇다.
그런데 그 비용, 생각보다 꽤 크다. 우선 출근부터 퇴근까지 회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상사 눈치도 봐야 하고 실수를 했다면 욕도 먹어야 한다. 낮잠을 자고 싶어도 참아야 하고, 여행을 가고 싶어도 기다려야 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마음은 너덜너덜해진다. 몸 건강을 온전히 신경 쓰기도 어렵다. 어디 하나 제대로 고장 나야 회복에 전념할 수 있다. 돌아오면? 다시 일상의 반복이다. 이래서 월급은 마약이라고 했던가.
사실 회사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회사는 개개인의 행복이나 삶의 의미가 아니라, 이윤 극대화를 위해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ESG 경영이 화두라지만 여전히 기업의 초점은 이윤 창출에 있다. 그 모토 아래 위계질서가 생긴다. 여기에 한국식 군대문화와 집단주의가 결합한다. 그렇게 모두가 아는 K-기업문화가 찬란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회사는 시스템을 위한 시스템이지,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내가 회사에 맞춰야지, 회사가 나에게 맞춰주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아니면 참으면서 다니든지. 아 물론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도 된다. 집단주의의 장점은 최상위 계층에게 가장 안락한 삶을 제공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오늘도 그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적어도 나에겐 이 모든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다.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것도, 누군가를 누르고 위로 오르는 것도 말이다. 정말이지 지독한 개인주의자다. 이러다 보니 어떤 회사도 눈에 차지 않는다. 이렇게 결심한다. 차라리 그 시스템을 내가 만들어보자. 최소한 내가 나를 먹여 살리자. 마약의 금단증상처럼 불안감이 엄습해오겠지. 금단증상을 이겨내는 건 대안이다. 다른 시선, 다른 시공간에서 빚어낸 대안.
괜히 급해지는 내 마음에 속삭인다.
천천히, 차근차근, 내 호흡에 맞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