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

대신 자산현황표를 작성한다

by 신거니

새해의 싱숭생숭함이 조금 사그라들 1월 2일, 조용히 한 엑셀 파일을 연다. 1년째 작성하고 있는 자산현황표다. 내가 가진 모든 자산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게끔 만든 시트다. 정기적으로는 매달 초 취합을 하고 있고 자산 액수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수정하고 있다.


그 전에는 가계부를 1년 반 정도 작성했다. 직장에 처음 발을 들이고 월급이라는 게 생겼으니 나름 경제활동이라는 걸 하기 위해. 정확한 수입과 지출 내역을 알고 싶었다. 거래 이체 수수료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자 더 이상 가계부를 작성할 필요가 없었다. 얼마의 수익을 올리고 있고, 또 얼마를 쓰는지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기간을 두고 평균을 내면 특정 금액에 수렴하게 된다.


가계부를 쓰는 일은 사실 번거롭다. 물론 요즘엔 지출 내역을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나와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현금으로 결제를 하거나 카카오페이로 이체를 한다거나 하는 내역은 여전히 제대로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귀찮지만 일일이 작성할 수밖에.


사실 가계부의 가장 큰 단점은 내 재정 상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수입이 300만 원이고 지출이 200만 원이다' 정도는 알 수 있지만 여기서 나올 수 있는 인사이트는 고작해야 '그래서 100만 원이 남는다' 정도다. 자산과 부채 내역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자산군이 가장 비중이 높은지, 전체 자산은 줄어들고 있는지 늘어나고 있는지 등 의사결정에 필요한 많은 정보가 결여되어 있다.


이걸 보완해주는 게 자산현황표다. 자산현황표는 가계부와 달리 특정 시점의 자산군, 그리고 액수를 기록한다. 어차피 수입(이익)과 지출(손해)의 결과로 남는 게 자산이니 그 현황만 쓰면 된다. 자산현황표를 작성하다 보면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지게 된다. 가계부를 쓰면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고, 또 소비를 줄일지에 주목한다. 당장 모든 수입-지출 내역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자산현황표를 쓰면 개별적인 수입-지출 내역이 아니라 전체적인 증감세에 더 주목하게 된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금융상품을 편입했다면 더더욱 이런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개별적인 수익률에 집착하지 않고 자산이 쌓여가는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내 개별자산은 등락을 반복하고 있고, 손해를 본 종목도 있지만 전체 자산액은 대체로 증가하고 있다.


만약 내 자산이 현금과 예금 정도라면 가계부로도 충분하다. 그 어느 자산군보다도 정직하게 쌓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식이나 부동산, 원자재, ETF, 채권, 펀드, ELS, 리츠, 달러 등 가격이 수시로 변하는 자산군이 있다면 자산현황표를 작성하는 게 좋다. 그래야 전체 비중을 계속 조절할 수 있고 특정 자산으로의 편중 현상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산현황표는 기본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 및 자산배분 전략을 전제로 한다. 자산 중 현금이 100%인 사람이 굳이 현황표까지 쓸 이유가 있을까? 자산배분은 기본적으로 수익 극대화보다는 수익 최적화를 모티브로 한다.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주식이나 코인 등 변동성이 큰 상품에 대부분의 자산을 투자해야 한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모든 자산이 휴짓조각으로 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여기에 빚까지 얻어 투자를 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전체 자산이 0을 넘어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경우 종목 선정이나, 매수 타이밍 등은 전체 수익률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보다는 얼마나 자산배분을 했느냐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갖는다. 자산배분이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여러 자산군을 편입시켜 수익을 최적화하는 방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게 주식과 채권을 섞는 전략이다. 주식 가격이 내려갈 때 안전자산인 채권 가격이 올라 그 손해만큼 보전해주고, 반대로 채권이 힘을 쓰지 못하는 저금리 국면에서는 주식이 전체 수익률을 견인한다.


수익 최적화라고 썼지만 사실 손해의 최소화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손해는 수익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체 자산이 100만 원이 있는데 정확히 10% 손해를 본 다음, 10% 수익을 봤다고 가정하자. 그럼 전체 자산은 100만 원이 아니라 99만 원이 된다. 동일한 비율로 손해와 수익을 반복하면 전체적으로는 약간 손해를 보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손해를 보전하려면 더 큰 이익이 필요하다. 워런 버핏이 투자의 1원칙으로 '절대 돈을 잃지 말 것'이라고 말한 건 이 때문이다.


수익이 아무리 많이 나도 손해가 한번 크게 나면 전체 수익률은 오히려 줄어든다. 그래서 자산배분이나 관리의 기본 전략은 수익 극대화가 아닌 최적화가 되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산을 늘리려고 돈을 버는 거지, 자산을 줄이려고 버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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