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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01. 2022

[4]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2022.1.1 성장로그

신체적으로 나이를 먹는 것은 인간적 성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나이를 거꾸로 드시는 분들도 있고, 또 경로우대 사상이 유독 심한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나이를 먹어가며 경험이 많아지고, 생각도 깊어짐을 느낀다. 시간의 깊이만큼이나 길이도 무시할 수 없다.


미래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과거에 있던 사람과 얘기를 나눌 수는 있다.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이와 자리를 함께 하면 된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기 얘기하는 걸 즐기니 서로 윈윈이다. 물론 상대방을 잘 골라야 한다. 부장님의 라떼 일장 연설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25살이 되면 반 오십, 30살이 되면 반 환갑이라고 한다. 어떻게든 숫자를 부풀리려 애쓴다. 대부분 나이 먹는 걸 두려워하고 외면하려 한다. 어르신을 보며 묘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죽음과 질병, 노화라는 정해진 미래를 눈앞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TED 강연에서는 이를 연령 차별주의(Ageism)라고 부른다. 성별, 지역, 종교,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건 지탄을 받지만 나이가 든 이들은 자신을 향한 시선에 항변할 수도 없다.


이는 나이를 먹은 이들이 일반적으로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거머쥐게 되는 사회적 편중 때문이면서, 한편으로는 누구나 가만히 있으면 그들처럼 되기에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부분이다. 젊음은 찬양받고 늙음은 기피대상이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의 20대 시절을 떠올려본다. 20대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추앙받는 시기다. 가장 빛나는 시기, 뭐든 도전해도 되는 시기, 육체적으로 가장 빠릿빠릿할 시기 등등 수많은 미사여구가 붙는다. 하지만 내 20대는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기쁘지도 않았다. 시간은 많았지만 돈은 없었고, 도전과 열정이라는 단어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겠는데 자꾸 뒤에서는 등을 떠민다. 20대 때 해야 할 10가지 리스트를 거의 끝내지 못한 채, 그렇게 30대로 넘어왔다.


사실 30이라는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생애주기별 필수 과업을 친절하게도 하나씩 열거해주는 문화권에 살고 있다면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터.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 그 숫자에 괜히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돈을 본격적으로 벌기 시작하며 대학생 시절보다는 넉넉해지고 경험도 늘어난다. 30대에 해야 할 10가지 리스트는 무시하더라도 인생의 방향성에까지 눈을 감을 수는 없다.


나이를 먹으며 세상일에 무뎌진다고들 한다. 원래가 무딘 사람이라 큰 차이는 못 느끼지만 사실 무뎌진다기보다는 그냥 그 순간을 넘기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잔소리는 여전히 귀에 거슬리고 불안함이 수시로 엄습해온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도 인생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면서 이게 반드시 나이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다만 100살이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형석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건, 나이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이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옛날보다는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나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면 사회적 연령이라고 한다. 그렇게 치면 난 아직 20대 초반이다. 정신승리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뭔가를 시작할 동기를 주기도 한다. 퇴사를 하고 이제 인생 ver. 2.0을 살아가고자 하는 나에게 이 나이먹음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어쨌거나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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