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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05. 2022

[5] 아침마다 명상을 한다

2022.1.5 성장로그

책 <트렌드 코리아 2022>가 꼽은 10가지 트렌드 중 하나는 '바른생활 루틴이'다. 작년에 등장한 '업글인간'이나 '갓생'의 또 다른 네이밍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자신만의 건강한 루틴을 정해서 실천하고 이를 소셜미디어에도 열심히 공유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말한다. 사실 바른생활이나 루틴 같은 키워드는 한참 전에도 있었다. '바른생활 사나이'나 '나만의 루틴'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대중적인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사회적인 행동반경이 축소되며 나만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이 시간을 처음에는 달고나 커피를 저으며 열심히 낭비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며 위기의식이 떠올랐다. 대면 접촉이 힘든 상황에서 그동안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남과의 비교가 불가능해진 탓이다. 이제 소셜 미디어를 필두로 한 온라인이 대세가 되었다. 온라인은 전 세계인들과 나를 이어주기에 비교는 더 광범위하고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나 혼자만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는 건 아닐까,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이 빈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등의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해온다. 이대로는 안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나의 존재도 확인받을 겸 소셜 미디어에 이를 기록해서 올리자. 그 기록은 내 존재에 대한 증명이면서 또한 동기부여가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브런치에 기록하는 성장로그도 여기에 해당한다.


직장인에서 백수로, 다시 일시적 반백수가 된지라 나름 루틴을 짜서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 실천하려고 했던 일이 트렌드라고 하니 거부감이 들다가도 쓸데없는 힙스터병은 접어두기로 했다. 좋은 건 좋은 거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 스트레칭을 한다. 요즘같이 추운 날 기왕이면 이불에서 나오지 않고 진행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불 밖으로 나와 주섬주섬 몸을 챙기게 된다. 아침밥을 먹고 아침 운동을 한다. 아직은 몸이 깨어나기 전이니 격하지 않지만 약간은 땀이 날 정도로. 그리고 창가에 앉아 명상을 한다.


다리를 꼬고 앉아 (유연성이 부족해 가부좌는 무리다) 눈을 감는다. 20분짜리 명상 영상을 틀어놓고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진행한다. 알찬 하루를 만드는 데는 운동이나 명상만 한 게 없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몸의 감각도 더 예민해진다. 당연하게 여기던 호흡도 새삼스러워진다. 내 몸이 매트를 누르는 감각, 무릎에 얹어진 손의 감각, 아까부터 가려운 눈가에 대한 감각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바로 진리를 깨닫거나 마음이 정화되지는 않는다. 명상은 내면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판단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구나 하고 인식한다. 물론 난 초보 명상인이라 수시로 뒤척이면서 나를 판단한다. 과거에 저질렀던 수많은 흑역사와 미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불안함까지 들락날락 아주 난리를 친다. 그래도 기왕이면 힘을 빼고 붙잡지 않으려 한다. 들숨 그리고 날숨.


영상의 음악이 감미로워서일까, 나 자신이 불쌍해서일까, 아니면 우주의 기운이 느껴져서일까, 가슴 안에서 뭔가가 벅차오른다. 종소리가 청량하게 울리고 눈을 떴다. 이제 산 귀퉁이에서 막 떠오르고 있는 해가 보이고,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이 보인다. 눈이 빛이 적응하는지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역시 명상은 자연을 바라보며 해야 제 맛이다.


인생에서 가장 벅차고 행복했던 순간에도 명상이 있었다. 인도의 판공 초라는 호수에서 가이드를 따라 명상을 했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자갈 소리만 가득하다. 우주에 나 홀로 떠 있는 기분이 든다. 고요함이다. 고요함에 포근하게 안긴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느낌인데도 외롭지 않고 오히려 충만해진다. 나 살아있구나 하고 되뇐다. 나 살아있었구나.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기쁘면서 슬프면서 감동적이면서 의미 있는 눈물이.


존재가 너무나도 가벼워져 붕 떠버릴 때면 난 명상을 한다. 세상의 필요에 너무 휘둘리면서 사는 것 같을 때, 난 고요함을 찾는다.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붙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니까. 날이 풀리는 봄날이 되면 제주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다. 길을 걷다가 좋은 명상 포인트가 있으면 자리를 펴고 앉고 싶다. 제주의 철썩거리는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이 맛에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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