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거니 Jan 07. 2022

반백수의 절약법

숨 쉬는데도 돈이 들어가지만 괜찮다

난 반백수다. 직장을 뛰쳐나와 현재는 스타트업에서 단기 인턴을 하고 있다. 하루에 4시간 정도를 근무하니 반은 백수이고 반은 직장인인 반백수가 맞다. 백수에게 (사실 직장인에게도) 가장 큰 화두는 돈이다. 돈은 여러 갈래로 나의 삶을 규정한다. 당장 필요한 생활비부터, 각종 공과금, 병원비, 경조사비, 문화생활비 등 갖가지 타이틀을 달고 내 지갑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돈을 벌기는 어려운데 쓰기는 숨쉬기보다 쉬운 세상이다.


직장인 생활을 청산하고 우선 본가로 다시 돌아왔다. 장장 10년 만의 귀환이다. 생활의 불편함이나 다른 요소를 차치하고라도 당장에는 돈이 상당히 굳는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던 월세와 관리비, 식비가 들지 않는다. 닭 우는 소리가 청명한 본가 주변에는 돈을 쓸 곳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도시와 가까운 시골인데 마치 반백수인 내 처지와 같다. 그 흔한 편의점이나 구멍가게 하나가 없다. 백숙이나 만두전골 따위를 파는 식당만 길가에 있을 뿐이다.


사실 천상 집돌이라 상관은 없다. 인터넷이 잘 돌아가고 주변에 산책할 길만 있다면 충분하다. 집 근처에 호숫가를 따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만족하고 있다. 와이파이도 야금야금 내 돈을 갉아먹고 잘 유지되는 중이다. 그래도 가끔 친구를 만날 때가 있기 마련이다. 반백수이지만 여전히 평일에 친구를 보기는 어렵다. 내가 가능해도 그들이 시간이 없으니. 그래서 주말마다 약속을 잡는다. 내 얇디얇은 사회적 관계가 그렇게 유지된다.


밥도 거의 삼시세끼 집 냉장고를 뒤적여서 해결하고 점심에도 도시락을 싸가서 사무실에서 먹는다. 회사까지 오가는 대중교통비 정도면 끝이다. 그렇게 정말 숨만 쉬면서 잘 사는 중이다. 여긴 공기도 깨끗해서 숨쉬기도 좋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처음에 여기 발을 들였을 때 맑은 공기에 당황했을 정도다. 닭도 울고 염소도 우는 청정지역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현재 숨 쉬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당장 내 통장에서 나가는 액수만 헤아려 보았다.


통신비 (+인터넷): 9.5만 원

넷플릭스 구독료: 1.35만 원

어도비 구독: 0.9만 원 (친구와 나눠서 내고 있다)

기부금: 2만 원

보험료: 3.8만 원 (실손보험 + 암보험)

교통비: 약 5~6만 원 (버스나 지하철만 타는 경우)

청약통장: 10만 원

할부금: 3.5만 원 (6개월 할부)

> 합계: 약 36.5만 원


청약통장이야 어차피 내 통장으로 다시 들어가는 돈이니 실제 비용으로는 26만 원 정도가 매달 나가는 셈이다. 숨만 쉬고 있다면 말이다. 국민연금은 우선 넣지 않고 있고, 의료보험은 부모님 밑으로 피부양자 등록을 할 예정이다. 집뿐만이 아니라 보험료도 부모님에게 찰싹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숨 쉬는 것 이상의 삶을 원한다. 가끔 친구도 만나야 하고, 햄버거라도 한 번씩 먹고, 다이소에서 손목밴드라도 사려면 (오늘 샀다. 겨우 천 원이다. 역시 다이소다) 말이다.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돈이 많이 깨진다. 다행히 빚은 없어서 관리만 잘하면 얼마든지 연명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절약하며 사는 것 같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삶의 질을 해쳐가면서까지 아끼지는 않으니까. 고기도 구워 먹고 책도 마음껏 산다. 이렇게 보면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만 있으면 충분히 먹고살고도 남는다. 그 외에는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투자금으로 남길 수 있다. 그래서 내 1차적인 수익목표는 한 달에 100만 원이다. 직장을 통하지 않고 독립하려면 그 정도 수익이 필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한 달에 100만 원, 아니 50만 원이라도 벌 수 있다면 굳이 가기 싫은 직장을 꾸역꾸역 다닐 이유가 없다. 모아놓은 돈도 있고 비록 소액이지만 매달 들어오는 배당금도 있다. 그래서 난 돈을 조금 벌어도 '이것밖에 못 벌었네'라고 생각하지 않고 '이 정도면 이 생활을 이만큼 더 누릴 수 있겠구나'하고 여긴다. 마음이 편하다.


사실 특별한 절약법이랄 것도 없다. 난 그냥 돈을 안 쓴다. 정확히는 쓸데없는 데는 안 쓴다. 반대로 말하면 쓸 곳에는 쓴다. 어떻게 벌든 돈은 똑같은 돈이지만 내 지갑에서 나가려는 순간 가치를 매기게 된다. 돈에 매기는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의류비는 사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의 활력소이자 감각을 키워주는 돈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서적비가, 누군가에게는 식비가 가치 있다.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돈을 적절히 쓴다. 뭐가 맞다 틀리다 정답이 있을 리 없다.


난 스스로를 잘 안다. 물건을 사서 얻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고 그 기능을 다 하면 그만이다. 대신 이른바 경험 소비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임하는 편이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거나, 독서모임을 나가거나, 책을 사거나, 전시회를 가거나 하는 식이다. 어떤 형태로든 콘텐츠를 생산하는 삶을 살 텐데 그러려면 이런 인풋이 매우 중요하다. 뭔가 들어오는 게 있어야 생각할 게 있고, 또 내보낼 게 생기는 법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저축만 하는 건 아니다. 남는 돈은 모으되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여러 자산에 배분하여 투자하고 있다. 자산 배분 투자가 나에게 가장 마음 편하고 잘 맞는다는 걸 안 뒤로는 특별히 수익률을 신경 쓰지 않고 돈을 묻어두고 있다. 정신 에너지와 시간도 비용이다. 내게 투자란 돈을 지키고 조금씩 불려 가는 수단이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행위가 아니다. 10살부터 투자를 시작한 워런 버핏 역시 자산의 대부분을 중년 이후에 벌었다고 한다. 돈을 버는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럼 결혼은? 집은? 자식은? 노후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성향의 차이겠지만 난 보통 현재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먼 미래에서 역산을 하지 않는다. 미래로 가면 갈수록 불확실성은 증대된다. 지금의 판단 기준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때 가서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아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난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다.


어차피 뭔가를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미래에 미리 가서 조치를 취할 방법은 없다. 어떤 자산군의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어디선가 가난한 사람은 예측을 하려 하고, 부자인 사람은 대비를 한다는 글귀를 읽었다. 당장 부자가 아니더라도 그 마인드는 배울 수 있다. 당장 내일 이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알기 어렵다. 다만 자산배분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수는 있다. 이상 반백수의 생존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완벽주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