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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03. 2022

간만의 퇴근길

백수인 듯 백수 아닌 백수 같은 나

보름 만에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처음 발을 들였다. 얼마 전 단기 인턴에 합격해 오늘부터 시작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선다. 아직 낮이라 하늘에 태양이 밝게 떠있다. 조금은 어색하게 버스를 탔다. 백수 시절보다도 더 이질적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중학생들이 하굣길에 오르는 게 보인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왜 집으로 가는 시간은 점점 늦어지는 걸까? 왜 가능한 한 밖에서 최대한 나를 쥐어짜도록 교육받았을까?


독일 교환학생 시절, 현지 친구와 길을 걷고 있는데 차들이 한창 막혀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다. 왜 이리 차가 많냐고 물으니 러시 아워(Rush hour)란다.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오후 3시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벌써 퇴근이라니. 실제로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근로 시간이 가장 짧은 편이다. 반대로 한국은 최장 근로 시간을 자랑한다. 그러니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내가 가진 상식이 상식이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팩트풀니스>는 이를 꼬집는 대표적인 저서다. 미디어는 연일 현대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뉴스를 쏟아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여러 지표가 극적으로 개선되었으며 현대인은 그 과실을 한껏 누리고 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역시 <Enlightenment Now>라는 책을 통해 이런 현상을 잘 보여준다.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우물 안에서 사고하고, 일정한 편견을 갖는다. 직장이라는 우물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나 전에 다녔던 회사는 아주 폐쇄적인 곳이었다. 세상의 흐름에도 귀를 닫았고, 인사적체가 심해 사람도 거의 순환하지 않았다. 갇혀도 아주 제대로 갇힌 기분이었다. 업무 자체보다도 이런 환경과 문화에 더 스트레스가 심했다. 결국 우물을 스스로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털어버리고 나니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 그 우물의 안온함이나 깊이가 말이다. 세상에는 정말 수많은 우물이 있다. 이 세상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우물이다. 다만 그 많은 장소 중 비빌 언덕을 찾는 게 인생이다. 그렇게 하나씩 점을 잇다 보면 선이 되고, 나만의 길이 된다.


그런데 그 길을 찾으려면 경험이 필요하다. 독일 교환학생을 가지 않았다면 '3시에도 퇴근할 수 있구나'하는 사실을 알았을까? 하다못해 이와 관련한 책이나 기사라도 접해야 한다. 바깥에는 더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고, 그 세상을 보려면 우물에서 나와야 한다. 회사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뭔가를 바꾸려면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야 한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조금 자라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 세상의 전부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미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리라. 그땐 내 좁디좁은 세상 속에서나마 충분하게 살았으니까. 그런데 나이를 먹고 점점 사회적 활동반경이 넓어지면 더 많은 게 보인다. 다른 이와 나를 비교하고, 심지어는 전 세계 사람들과 경쟁을 하게 된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디어는 타인의 빛나는 이미지를 열심히 퍼 나른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된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우물 밖으로 나간다는 건 실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물 밖은 춥고, 낯설고, 어색하다. 평일 오후 3시쯤 뻘쭘하게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알 수 있다. 특별히 불행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엄청 행복하지도 않다. 날 우물 밖으로 이끈 건 오로지 의미였다. 내 삶이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엄습하니 몸이 움직였다. 새로운 우물에 발을 담근 지금, 새삼 느껴지는 진리 하나. 퇴근길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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