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페이스북이 싫어합니다
난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 브런치를 비롯한 블로그는 몇 개 가지고 있지만 지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SNS 계정은 다 삭제한 지 오래다. 그래도 가장 핫한 인스타그램 아이디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나 느끼던 와중, 독서모임에서 인스타그램과 관련한 책이 선정되었고 겸사겸사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그냥 맛만 보자는 느낌으로 게시물은 올리지 않았고 팔로우도 딱히 하지 않았다. 몇몇 친구들이 팔로우를 하면 맞팔을 하는 정도로 유지했다. (팔로우인지 팔로잉인지 아직도 헷갈린다)
가끔가다 좋은 강연 일정이나 맛집 정보도 올라오니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다 어제 <소셜 딜레마>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사실 이미 예전에 한번 봤던 작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인데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중심으로 한 소셜 미디어 및 각종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폐해를 지적한다. 새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 나를 둘러싼 여러 앱이 떠올랐다. 인스타그램 활동 자체는 하지 않았지만 알람이 수시로 올라와 내 집중을 방해했고, 유튜브는 수많은 광고와 추천 영상으로 시간을 빼앗았다. (영화 <인크레더블 2>도 그렇고 <소셜 딜레마>도 그렇고 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하는 미디어는 어떻게 봐야 할지 아직도 헷갈리긴 한다)
예전에 이런 강의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구글의 경쟁자는 페이스북이나 삼성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구글이 '룬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하늘에 와이파이가 가능한 열기구를 띄우려 하고(얼마 전 포기하긴 했다), 자율주행차량을 개발하려 하는 이유. 물론 공익적인 이유를 댄다. 오지에 인터넷을 공급하고, 소비자의 편의를 돕기 위함이라고. 속내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구글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운전을 할 시간에 유튜브를 시청하고, 아프리카나 남미 오지에서도 구글 검색엔진을 활용할 수 있다면? 사용자의 시간을 장악할 수 있고 이는 더 높은 광고수익으로 이어진다.
<소셜 딜레마>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유수의 IT기업에서 일했던 직원이 나와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비록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었지만 그들마저도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화장실에도, 침실에도 스마트폰을 항상 들고 다니며 수시로 뜨는 알람에 정신이 분산된다. 그동안 내가 가진 정보와 시간은 착실하게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IT 대기업에 팔려나간다.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현실에서 친구와 나눈 말 한마디도 광고에 반영된다(아이폰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친구와 이혼이니 가정법원이니 하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그 친구의 지인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구글 지도에 떡하니 이혼 전문 변호사의 사무실이 마크되어 있었다. 스마트폰이 다 듣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가 보험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입력되어 그 보험사가 유튜브 광고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제 스마트폰은 나 자신보다 내 사생활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하거나 맞춤형 광고로 내 지갑을 노리는 것(물론 어림도 없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 시간이 팔려나간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개인이 가진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한번 쓰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소비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가지고 있는 시간 또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어떻게 이 시간을 알차고 충만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가 인생 화두 중 하나다.
그런데 고작 광고나 소셜 미디어 알람에 내 시간을 빼앗긴다면 이보다 더 아까울 수 없다. 다큐멘터리가 끝나자마자 애드블록(adblock) 프로그램을 깔아 광고를 차단했고, 인스타그램과 몇몇 필요 없는 앱도 삭제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매년 새해가 되면 실천하는 나름의 의식이 있다. 바로 카톡을 열어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이의 연락처를 지우는 일이다. 대화가 끊긴 단톡방에서 나오기도 한다. 핸드폰의 저장용량도 일부 확보하면서 관계도 정리할 수 있다. 관계도 결국 다 시간이 소모되는 일이다. 좋은 이들과 어울리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내겐 시간이 그만큼이나 소중하다.
퇴사를 한 것도 결국은 시간에 대한 주도권을 찾아오기 위함이다. 책 <돈의 심리학>에 따르면 돈이 주는 최고의 배당금은 시간이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돈뿐만이 아니라 일하는 환경에서도, 관계에서도, 하다못해 스마트폰에서도 결국은 시간이 문제다. 인스타그램을 삭제하고, 루틴을 짜서 실천하고,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고, 퇴사를 하고, 경제적 자유를 위해 골몰하는 건 시간을 주체적으로 소유하려는 노력이다.
그렇다고 회사를 다니고, 인스타그램을 하고, 약속을 나가는 게 다 시간낭비라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스타그램이 생계를 이어주는 생산적인 수단일 수도 있고,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이와 연결되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욕망이 다르고 특정한 시간에 매기는 가치가 다르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저마다 가진 다륾을 거스르지 않는 삶이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