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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13. 2022

반백수는 오늘도 루틴 중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 하나 싶을 때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을 먹고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씻고 회사를 다녀왔다가 줄넘기를 하고 글을 쓰고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한편 보고 책을 읽다가 잠들기.


요즘 하루를 한 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 (반)백수의 시간은 자유롭다. 그래서 위험하다. 조금만 정신줄을 놓으면 마치 낚싯줄이 풀리듯 속절없이 사라진다. 안 그래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한 바가지 안고 살아가는데 현실까지 놓쳐버리면 큰일이다.


최근 트렌디함으로 포장이 되어서 그렇지 루틴이라는 개념 자체는 예전부터 쭉 있어왔다. 바른생활이나 계획적인 삶 같은 워딩으로. 다만 루틴은 조금 더 목표지향적인 활동이라는 점, 그리고 자체로 자신의 효용성이나 자존감과 관련이 깊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루틴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동인도 여기에서 온다. 루틴 자체는 지루해 보인다. 매일 같은 일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니. 하지만 그 지겨운 일을 스스로 특정하고 달성할 수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삶에 큰 보탬이 된다.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성이나 습관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으로 인생을 끌어갈 수 있다. 적어도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사실 회사나 학교만 가도 루틴은 넘쳐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통제된 환경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이는 적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틴이란 스스로에 대한 규율이면서 주체성의 발로다. 그래서 힘들지만 괴롭지 않다.


어쩌면 루틴의 끝에 닿아있는 목표는 오늘도 알찬 하루를 살아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핑계 인지도 모른다.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지 못해도 괜찮다. 어쨌든 난 건강을 챙기는 주체적인 개인이니까. 이는 중독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루틴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 걸까? 루틴 자체의 잘못은 아니다. 루틴이라는 배를 타고 키를 쥐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그저 불안감에 정해진 루틴을 따르고 있는 거라면 그게 주체적인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난 내 루틴에 만족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깐깐하게 굴지 않으려고 한다. 루틴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 또 현재를 충실히 살아내는 건 어쨌든 보람찬 일이다. 어쩌면 이 모든 불안감은 가시적인 성과가 당장 나오지 않는다는 조급함에서 온건 아니었을까? 조급하게만 살아가기엔 삶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오래된 돌벽의 결을 따라 촉감을 느끼듯 진득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간도 있는 법이다.


멈춰야 보이는 무언가도 있고, 때로는 뒤도 돌아봐야 한다. 바쁘게 살아낸 시간만큼 빈 시간도 삶을 알차게 채워간다. 꼭 목적지가 없어도 좋다. 꿈도 목표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묵묵히 살아가면 된다. 인생은 사실 대체로 재미없고, 지루하고, 의미 없다. 매 순간 행복과 의미를 찾으려는 발버둥이 도리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삶의 의미와 충만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조차도 그렇다.


이는 허무주의의 단초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의연하게 삶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사실 모든 건 마음의 문제다. 똑같은 루틴을 수행하면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 의미란 부여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허무주의는 허무하다.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사소하지만 꾸준한 루틴에 나름의 의미를 얹어보자. 딱 그만큼 내 인생에는 의미가 부여되고 앞으로 걸어 나갈 힘을 준다. 그래서 난 오늘도 루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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