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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16. 2022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어도 괜찮게

30대가 되니 좋은 점 하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 하다못해 20대에서 30대가 된다는 일종의 공포감(?)을 흘려보냈으니 하나는 성공한 셈이다. 20대 때는 30대가 마냥 두렵다. 이제 더 이상 온전한 젊은이라고 불릴 수도 없고, 피부도 점점 탄력을 잃고, 사회의 무거운 책임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실은 29살이나 30살이나 별 차이도 없지만 그런 팩트 따위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어버린다.


아는 동생들이 오래간만에 연락을 해왔다. 벌써 30대가 되었냐며 놀린다. 난 20대보다 30대가 더 좋다고 했더니 믿질 않는다. 아마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말하나 싶었을 것이다. 너희도 언젠가는 30살이 된다고 했더니 몇 년 뒤에 되니까 그때 가서 보잔다. 동생들에게는 30대보다 20대가 훨씬 생기 있고 젊고 활력이 넘치는 시기일 테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구나 했다.


책 <철학의 위안>에서 알랭 드 보통은 여러 철학자를 소개한다. 그중 세네카라는 철학자가 유난히 눈에 밟힌다. 세네카는 운명에 순응할 것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운명을 마차에, 인간을 그 마차에 묶인 개에 비유한다. 마차는 개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움직인다. 개는 저항도 해보고, 무기력하게 끌려가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엔 마차의 움직임에 따라 걷는 게 가장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운명에 순응하라니. 얼핏 들으면 거부감이 든다. 그냥 되는 대로 살라는 말 같기도 하다. 여기서의 운명은 '내 통제를 벗어난 어쩔 수 없는 순리'다. 세상의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신이 아니다. 어떤 일의 결과는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죽지 않으면 나이를 먹는다. 이를 거스를 수는 없다. 아무리 발버둥 치고 거부해봐야 30대는 찾아온다. 그래서 난 차라리 30대를 한껏 끌어안기로 했다. 앞으로 찾아올 40대, 50대도 수용해야 하니까.


받아들인다는 건 포기도 아니고 도피도 아니다. 어쩔 수 있는 것과 어쩔 수 없는 걸 구분하여 마음을 평안하게 가져가려는 지혜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볼 수는 있지만 좋은 점수를 받는 건 장담할 수 없다. 애초에 공부를 할 여건이 되질 않으면 그 또한 내 통제 바깥의 영역이다. 물론 세네카 역시 세상에는 더 나은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는 부자가 되는 게 낫다. 병든 몸보다는 건강한 신체가 낫다. 실제로 세네카 역시 상당한 부를 소유한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불안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정쟁에 휘말려 유배를 가기도 했고, 결국은 네로 황제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세네카는 지혜로운 순응을 선택했다. 외부 상황은 통제할 수 없지만 철학자의 마음에는 그 무엇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 30대가 되는걸 두려워하고 거부해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나이듦을 받아들이고 그 기반 위에서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라는 말을 남겼다. 오늘의 성실함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다만 인생 전체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선택하기 어렵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상이 커질수록 통제라는 건 그저 순진한 망상이 되어버린다. 자신이 거대한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는지 역사가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전체주의나 공산주의의 실험이 실패한 게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 매일 글 한편씩 브런치에 포스팅을 하고 있다. 이건 어찌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브런치가 대박이 나서 출판으로 이어지고, 강연 요청이 쏟아지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인플루언서가 되고 하는 식의 결과는 어찌할 수 없다. 결과만 생각하고 일을 벌이면 쉬이 지치고 짜증이 난다. 목표를 세우는 건 좋지만 그게 달성될지는 알 수 없다. 또 만약 '인플루언서가 되겠다, 경제적 자유를 얻겠다'식의 추상적인 목표를 세웠다면 실패할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매일 글 한편씩을 적겠다, 자기 전에 투자 공부를 1시간씩 하겠다'식의 소소한 다짐을 하는 게 낫다.


한편으로는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힘이 되는 이도 있다. 삶의 방향성을 잘 잡아주니까. 맞는 말이다. 목표를 세우든 세우지 않든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어떤 일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 물론 죽음의 순간에도 초연했던 세네카처럼 될 필요는 없다. 마음이 지옥으로 변할 때, 원치 않는 결과에 좌절하고 실망할 때 이 역시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선 나부터 실천해야 할 지혜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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