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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맥주가 4캔에 만천 원이라니

맥주값이 어쩌다 이렇게 올랐을까

by 신거니

올 1월을 기점으로 주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수입맥주 가격이 기존 4캔 10,000원에서 11,000원으로 인상된다. 제조사 측은 원재료값, 물류비, 주류세 인상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입맥주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부담이 커지게 생겼다.


아마 편의점 본사 측에서도 설왕설래 말이 많았을 것이다. 대개 제조사 측에서 공급가 인상을 통보하면 유통사 측에서는 가격 방어를 위해 협상을 하게 된다. 판매 마진을 줄이기는 어려우니 공급가 인상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제조사 입장에서도 제조 원가가 인상되면 그에 따른 비용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하청업체에게 그 비용을 떠넘기다가 한계에 봉착하면 공급가 인상이라는 선택을 내리게 된다.


대개 유통사가 갑인 경우가 많아 공급가 인상은 제조사에서도 쉽사리 건들기 어려운 이슈다. 우선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우니 보통은 피해 가려한다. 그렇게 공급가 인상 및 판매가 인상이 결정되면 각 편의점에서 맥주 가격이 오르고, 수입맥주 4캔에 11,000원이라는 현상을 맞이하게 된다. 전에 다니던 유통회사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사실 '수입맥주 4캔에 만원'이라는 프로모션은 꽤 공고하게 자리 잡던 일종의 관행이었다. 개별 맥주캔을 구입하면 보통 3~4,000원 꼴인데 이를 캔당 2,500원에 살 수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 수밖에 없다. 여러 종류의 맥주를 한 번에 저렴하게 구입하여 냉장고에 쟁여두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이 프로모션이 등장했을 때 편의점 매출이 들썩일 정도였다. 제조사 측의 아이디어인지, 유통사 측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편의점을 찾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다. 제품을 소분하여 비교적 비싼 가격에 팔던 편의점의 운영 방식과는 다른 전략이기도 했다.


사실 편의점 수입맥주 가격 인상은 심리적 저항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인플레이션을 타고 그야말로 월급 빼고는 다 오르는 시대, 소소한 즐거움을 주던 '4캔에 만원'이라는 공식마저 깨져버린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즐기지 않는다. 부정적인 변화라면 그 정도는 더 심하다. 물론 4캔에 만원이든 만천 원이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기분이 좋지 않다.






최근 풍부한 유동성과 수요의 증가로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주요 국가에서 다량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했고, 이는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물경제는 회복되지 않았으니 월급으로 대표되는 근로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 중인데 여러 자산의 시세차익을 통해 이익을 본 이들이 생겨난다. 이런 흐름에 올라타려는 가장 대표적인 움직임이 '동학 개미 운동'이다.


여기에 각 정부에서 팬데믹을 이유로 아예 일반 국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그 액수가 상당하여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 소위 '대 퇴사 시대'가 도래한다.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보조금이 지급되고 이는 소비로 이어진다. 해외여행도 여의치 않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명품 등의 구매가 증가한다. 실제로 대표적인 명품시계 브랜드인 롤렉스의 경우 재고가 없어 판매가 안 될 지경이라고 한다. 심지어 매장에 있는 진열품까지 다 사가니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대 소비시대'는 각 소비품을 판매하는 여러 기업의 실적 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주가 상승을 이끌어낸다. 또한 전 세계적인 물동량과 수출량이 증가해 조선업계는 때아닌 특수를 누린다. 대표적인 수출위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한국 역시 역대 최고 수출량을 달성하며 이런 흐름의 수혜자가 된다.


하지만 경제에서 좋기만 한 일은 없다. 자산 가격의 상승으로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아지고 이들이 공격적인 소비를 이어가자 전 세계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류비도, 원자재비도, 인건비도 오른다.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은 증가한다. 그 와중에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장이 가동을 멈췄던 탓에 공급이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가격이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저금리 기조를 타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밥상 물가는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부담을 온전히 떠안는 건 일반 소비자다. 사회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그 몫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맥주 가격 인상만 봐도 그렇다. 맥주 공급가가 인상되었을 때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제조사(하청업체 포함)에서 비용 증가분을 떠안는다.

2. 유통사에서 비용 증가분을 떠안는다.

3. 소비자가 비용 증가분을 떠안는다.


물론 공급원가 1,000원이 올랐다고 판매가를 바로 1,000원 올리지는 않는다. 제조사에서도, 유통사에서도 보통 일부 비용을 감당한다. 다만 가장 큰 부담은 소비자에게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면 제조사나 유통사 입장에서는 매출이 오르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 주주나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만큼 편리한 선택지가 없다. 다만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이나 정부의 규제 같은 부분을 고려하여 눈치를 보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 산 주식이 오르는 이유는 나보다 더 비싸게 그 종목을 거래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라면값이 몇 년간 오르지 않았다면 그건 제조사나 유통사 측에서 인상폭을 떠안으며 억제한 탓이고, 결국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의 가처분 소득은 그만큼 줄어든다. 제조사나 유통사가 계속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인상을 막는다면? 그 회사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이 동결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개입하여 지원금이나 규제 정책을 펼 수 있다. 여기서 발생한 비용은 국가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재원이 크게 세금과 국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세금도, 국채 이자도 결국 근원을 파고들면 일반 국민이나 기업이 지불하고 있다.






그럼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태초에는 누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한 걸까? 한마디로 누가 처음 돈을 풀었을까? 답은 은행이다. 자본주의는 조금 거칠게 말하면 빚으로 운영되는 체제다. 외부와 교류가 전혀 없는 한 마을을 상상해보자. 그 마을에는 처음 발행된 100만 원 정도의 화폐만이 돌고 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기 위해 화폐를 사용하지만 그 이상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되지는 않는다. 전체 화폐 유통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폐의 개념이 비교적 공고히 자리 잡았던 중세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화폐의 유통이 국가, 특히 왕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정해진 수량 안에서 나눠먹는 식이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이런 상상을 했다. 다른 사람이 맡긴 돈을 일부만 금고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빌려주면 되지 않을까? 또 빌린 날짜만큼 정해진 이자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는 기업의 폭발적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아이디어였다. 기존에는 폐쇄적인 시장에서 돌고 도는 100만 원 안에서만 기업의 탄생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은행에서 빚을 내어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기업가(당시에는 상인)들은 대출을 받아 자본을 몇 배로 키울 수 있었고, 은행 역시 이자의 형태로 보상받았다.


자본주의는 빚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는 체제다. 자본주의는 빚이다. 빚이라는 하나의 상상, 혹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이렇게 바꿔놨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빚에 시달리는 이들은 실은 실체도 없는 상상의 존재에게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상상의 존재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 하늘에서 용이 나를 집어삼킬 거라고 걱정할 이유는 없지만, 은행에서 날아온 고지서를 외면했다간 큰 화를 당할 수 있다.


이제 물리적인 존재 이상으로 상상의 존재가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물리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세계마저 메타버스나 가상현실로 전이된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변화할까?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이 금속 캔 안에 많은 게 담겨 있었구나. 그래도 비싸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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