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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니 Jan 26. 2022

마이크로 매니징 하는 나쁜 상사

'마매'는 어떻게 조직을 망치는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이크로 매니징 하는 상사를 만나게 된다. 설령 이 단어를 들어보지 않았더라도 한번 겪어보면 도무지 잊을 수 없는 타입이다.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nging, 이하 마매)은 문자 그대로 업무에 하나하나 간섭하며 지시하는 방식을 말한다. 더 심해지면 나노 매니징(Nano Managing)이라고 부른다.


인성이 파탄난 상사나 게으르고 무능한 상사와는 달리 마매를 하는 상사는 일견 문제가 없어 보인다. 깐깐하긴 해도 실수도 그만큼 줄어드니 좋은 거 아닐까? 물론 너무나도 중대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어 더블 체크, 트리플 체크를 요하는 직무에 있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상황에서조차 마매가 상황을 반드시 개선하는지는 고민해볼 여지가 있다.


마매의 문제점을 짚어보기 전에 상사, 더 나아가 리더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리더십은 꼭 CEO나 임원급에게만 요구되는 자질이 아니다. 설령 자신의 관리를 받는 부하직원이 없더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리더십이란 누군가를 이끄는 능력이면서, 동시에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한 상사를 생각해보자. 이들은 자신보다 직급이 높거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허리를 숙인다. 하지만 자기보다 조금만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면 가스 라이팅과 반말, 막말, 고압적인 지시를 아끼지 않는다. (나를 '야'라고 불렀던 상사가 생각난다) 이들은 어떤 리더인가? 어떻게 조직을 바라보는가? 무엇보다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리더십은 단순 업무지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리더십은 사실상 조직문화의 원천이 된다. 어떻게 조직원을 관리하고 지시를 내리는가? 결과물에 대해 어떤 피드백을 내리는가? 조직원은 스스로를 어떤 존재라고 인식하는가? 이런 질문에 말과 행동으로 답하는 게 리더다. 특히 리더십이 조직원을 특정한 형태로 벼려낸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리더의 자리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앞서 언급한 마매 하는 상사를 생각해보자. 이런 유형의 상사는 부하직원을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자신의 피드백을 거쳐야 하고, 또 수정되어야 한다. 자기가 가장 일을 잘 알고 있으니까. 보고서의 토씨 하나, 엑셀 시트의 수식 하나에도 일일이 관여한다.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고 이런 감정은 조직원에게 전파된다. 긍정적인 피드백보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업무를 진행한다.


그럼 반대로 조직원은 어떨까? 마매 하는 상사를 만나면 당혹스럽다. 처음에는 그 상사의 요구에 맞추려 열심히 노력한다. 표 선 두께나 글자 자간까지 터치하지만 그러려니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마매가 더 심해지면 깨닫게 된다. 아무리 해도 상사의 마음에는 결코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상사가 일하는 방식이 곧 법이니 그분의 마음을 읽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대개 세 가지 반응이 나온다.


1. 포기하고 상사에 의존한다.

2. 어떻게든 맞추려고 하다가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차라리 1번을 택한다.

3. 매번 부딪히며 대립각을 세운다. 하지만 마매가 끊이지 않으면 결국 1번이나 2번으로 돌아간다.


마매 하는 상사의 부하직원에게 책임감이나 주인의식을 기대하긴 어렵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철저히 의존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소용이 없다. 결국은 자간이나 폰트 색상 등을 지적당할 테니. 이건 이래서 안된다, 저건 저래서 안된다라고 하더니 결국은 자기 방식대로 밀어붙인다. 특별히 독선적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자기 방법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식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부모와 같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은 의존적이거나 반항적으로 변한다. 반항 역시 반항을 위한 반항인 경우가 많다. 자아가 없는 좀비에 가깝다.


하지만 정작 마매의 당사자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마매 하는 관리자의 상사도 마찬가지다. 사실 하나하나 일일이 체크하며 실수를 막아주는 부하직원만큼 든든한 사람도 없다. 업무도 표면상으로는 매끄럽게 흘러간다. 조직원의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때로는 이탈하지만 문제 삼지 않는다. 꼼꼼한 게 죄는 아니니까.


꼼꼼한 업무 스타일과 마매를 가르는 기준은 자율성에 있다. 마매 하는 상사 밑에 있는 조직원에게는 자율성이 없다. 자율성을 발휘한다는 건 상사가 세운 자의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이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으로 여겨진다. 윗선에서 계속 걸고넘어지면 보통은 그냥 따르는 식으로 대응하게 된다. 그렇게 자율성이나 주인의식이 점점 실종된다.


의존성이 심화되면 조직원은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상사의 지시만 기다린다. 상사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자기가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질 않으니 일일이 업무 방향을 일러줘야 한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그렇다고 조직원의 손에 온전히 맡길 수도 없다. 저렇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다 손을 대는 게 속 편하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된다.


만약 CEO가 마매를 한다면 이는 회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업무는 오로지 '그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물론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꼼꼼함도 요구되지만 동시에 조직원이 스스로 업무를 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책상 위치까지 간섭을 하면서 창의성이나 혁신을 말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다.


리더는 저마다의 위치에 따라 가져야 할 초점이 있다. 직원이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지 구두를 신고 다니는지 체크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더 거시적인 관점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배를 지휘하는 선장이 바닥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원하는 목적지에 닿을 수 없다. 망원경으로 수평선을 바라보든, 키를 잡든, 지도와 나침반을 들여봐야 한다. 적어도 배가 잘 굴러갈 수 있게 지시라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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