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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little less conversation Jun 01. 2020

prologue

두 갈래 길 앞에 선 우리

식사를 마친 어느 날 저녁. 

TV에서는 여느 때처럼 코로나19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뉴스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인간 활동의 위축으로 자연은 오히려 회복되고 있다는 기사를 다루면서

대기질이 크게 개선된 세계 주요 도시들과 인간이 독차지했던 영역으로 돌아온 야생동물들, 

투명하게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해진 베네치아 운하의 모습을 소개했다. 






"그래. 이게 하느님이 주시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지."


함께 TV를 보던 어머니께서 나지막하게 말씀하셨다. 

늘 인간만사에는 모두 하느님의 뜻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계시는 어머니다운 해석이었다. 




2018년, 지속가능성을 모토로 한 레스토랑을 오픈한 이후 여러 건의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공통된 질문 중 하나는 지속가능성이나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 라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시원하게 해 줄 수가 없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인생의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경험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여느 요리사들처럼 좋은 식재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재료들은 어디서 어떻게 길러지고 생산되는지 궁금해졌다. 

좋은 식재료란 곧 '잘 자란', '잘 길러진'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데 바로 이 '잘'이라는 것의 본질을 쫓다 보면 그 종점은 언제나 환경과 관계, 인권, 동물권과 같은 것들에 닿아 있었다. 

그것들은 내가 일하고 있는 주방과 손님의 테이블 너머의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었다. 



관련된 책들과 영상들을 틈틈이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자료들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먼저 놀랐다. 

그 말은 동시에 그간의 무지와 무관심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사실들 중에는 잘못된 정보이거나 틀린 것들이 많았고 파고들면 들수록 알아야 할 것들이 꼬리를 물었다. 차려진 식탁의 이면에는 몰랐던 사실들이 꽤나 많았다. 





'진정한 현명함은 무지의 자각에 있다.' 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되뇌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더 늦기 전에 알게 된 것이 실로 다행이었다. 



1차 생산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차츰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이 요구하는 규격이나 채산성을 전제로 한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수확물은 대부분 맛있었고 자연의 모습을 닮은 표정과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남양주와 철원, 논산에서 같은 시기에 나온 비슷한 모양의 당근들은 각기 다른 색과 향, 무게, 식감으로 생산자와 그들이 길러진 땅의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의 생산자들은 자신들만의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기대어 있는 자연과 공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인생의 단계가 있다면 그들은 나보다 몇 단계나 위에 있는 선배들 같아 보였다.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의문이 생겼고 급기야 주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재료들의 생산방식을 따져보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복잡했지만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의 방향은 점점 선명해졌다. 

작은 주방을 벗어나 자연에 시선을 두고 걸음 하기 시작했다.

농부와 목부들을 수소문하고,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시장을 찾아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원래부터 바다를 좋아했으니 바닷가 마을로의 출장이나 배를 타는 일 같은 건 오히려 즐거웠다. 

전화번호부에는 생산자들의 연락처가 늘어갔고 그 사실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의 작은 주방에서도 조금씩 얼굴 있는 생산자들의 작물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재료들을 만질 때마다 그들의 얼굴과, 그들의 터전인 들판과 바다가 떠올랐다. 

가끔씩 농장에서 본 동물들의 표정이나 온기의 기억이 집중을 방해하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나에게 익명이었던 존재들과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생긴 것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곳들이 다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전보다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어쩌면 나에게서 날아갔을지 모르는 해변의 쓰레기를 주우며 스스로를 반성했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커져가는 내면의 소리는 양심, 책임감, 부끄러움, 두려움, 사명감 등의 복잡한 감정들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배움과 경험의 속도와 비슷하게 자라났다. 


3,4년간 배우고 깨닫는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주방의 작은 부분들부터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뜻이 맞는 사람들과도 인연이 닿았고 운 좋게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레스토랑을 차리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식탁 만들기'라는 우리의 거창하고 확고한 목표는 업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식당의 앞날에 대해 우려하고 격려해 주었다.


1년 반 정도의 운영기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거의 매일 바뀌는 변수들과 용이하지 못한 수급상황, 계절과 상황에 따른 작물의 불확실한 품질 같은 기본적인 난관들과 함께 우리는 여러 가지 실험들도 병행해야 했다. 

그 실험은 맛과 가치의 전달, 이해와 의미부여,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우리가 이루는 삼각관계, 우리 내부의 가치관 정립, 레스토랑 자체의 지속가능성 등 여러 부분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기에 업무의 수행에는 시행착오가 많았고 우리의 고민과 현실, 꿈에 관한 대화는 주방에서건 술자리에서건 잠자리에서건 늘 진지하고 치열하게 이어졌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 레스토랑은 현재 잠정 휴업 상태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그 과정을 통해 가장 많이 바뀐 건 나 자신이었다. 

애석하게도 요리사들의 일상적인 식사는 대게 그들이 제공하는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요리들과는 동떨어져있다. 그전까지 불규칙한 시간과 균형과 영양을 무시한 끼니로서의 식사는 10년 이상 내 요리인생과 함께 해왔고, 사는 데에 있어서 환경에 대한 고민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차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주는 것조차 인색하게 살았다. 

수신제가(修身齊家) 라 하였거늘 더 이상 안될 일이었다. 

다행히도 그 레스토랑에서 보내는 시간에 비례해서 스스로의 생활을 돌아보고 바꾸어나가는 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생의 어느 때보다 내 삶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것들과 주변 환경, 관계 맺기와 시간 사용법 같은 것들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요리와 먹거리, 식탁 위에 차려진 것들에 대한 이 시대의 관심은 인간들이 살아온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크다. 하지만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 재료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누가 만드는지에 대하여 역사상 가장 무지한 세대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풍족하게 먹고 마시는 것, 그것은 자연의 고갈을 밟고 서 있다.

그리고 이 고갈은 불과 지난 6-70년 사이에 빠르게 이루어졌다.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하여 우리의 식탁을 바라보면 지금과는 많은 것들을 바꾸어야 한다.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낙관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우리에게 두 가지 길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포기하는 것과 노력해보는 것이다. 


삶의 전부분에 걸쳐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알고 행동하는 것과 몰라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이지만 그로부터 파생되는 결과와 미치게 될 파장 또한 엄청나게 다르다. 우리는 그 다름의 결론을 자연과 우리의 삶 안에서 발견한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의 중심이 된 '지속 가능한 식탁 만들기'라는 주제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이와 관련된 생각들로 채우며 살고 있기에 이는 그간 학습하고 느낀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현재 진행형의 작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를 위한 준비와 실천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위함이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지는, 

그리고 함께 고민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부쩍 보고 싶어 지는 날이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입니다.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中 



**

레이첼 카슨은 이 책을 통해 전 세계 살충제 남용의 위험을 처음으로 알렸다. 

이 책은 1962년에 발간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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