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줌아트센터 박정희 연출 히어(HIR)
국내 최고가 아파트 값을 보이는 ‘한남더힐’ 진입로 좌측으로 들어서 있는 ‘더줌아트센터’는 공연장과 갤러리를 갖추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지원하면서 LG, 두산아트센터의 제작극장들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128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음악, 판소리, 뮤지컬과 연극 등 다 장르가 공연되고 있고 장기하, 이자람, 양손프로젝트,이윤정 등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한남동 더줌아트센터를 알렸고 연극으로는 영국의 극작가 엘라 학슨(Ella Hickson)의 <오일>(2021)과 김우옥 연출의 구조주의 연극 <겹괴기담>(마이클 커비, 2012)를 선보였다. 연극 <HIR>( 작, 테일러 맥, 박정희 연출)는 제작극장의 가능성에 시동을 걸고 있는 첫 번째 작품으로 국내 초연작품이다.
작품 제목은 극중인물 맥스(김하람 분)를 호칭하는 젠더 중립적인 목적격 대명사로 썼다. 생물학적인 엄마 페이지(박명신 분)과 아빠 아놀드(김수현 분), 오빠 아이작( 홍선우 분) 사이에서 맥스는 자신의 호칭을 ‘she’나 ‘he‘ 보다는 성별 중립 인칭대명사인 ’Ze‘ 대명사로 불리길 원하고 ’Her‘, ’him‘ 대신해 HIR(히어)목적격 대명사가 되는 트랜스젠더다. 2000년대부터 뉴욕의 다운타운과 브로드웨이에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 테일러 맥은 본인의 젠더를 여성, 남성, 논바이너리를 넘어서performer(행위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젠더담론을 작품과 공연 그리고 작가의 실천적인 활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극 <HIR>는 작가와 맥스, 페이지와 동일화 되어 있으며 그가 겪어온 경험적인 데일러 맥과 가족의 이야기 일수도, 그가 바라는 미국 사회의 한 가정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연극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붕괴되어가는 미국의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가부장제의 붕괴, 젠더와 퀴어의 담론 그리고 미국사회
극 중 장면의 한 장면이다. 페이지는 미 해병대에서 돌아온 뒤 성별이 바뀌어 있는 상황에 적응 못 하는 아이작 한테 대사를 날린다.“ 네 여동생은 더 이상 네 여동생이 아니야. 지[Ze]는 새로 태어났어. 혁명적이지. 니네 세대가 원래 이런 거는 더 빨리 적응해야 하는거 아냐? 트랜스 섹슈얼이야.(중략) 새로운 젠더에는 당연히 새로운 대명사가 필요하기 마련이지.”눈치를 챘겠지만 미국의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연극<HIR>는 극중인물 맥스와 페이지를 통해 젠더사회와 이론, 퀴어문화, 급진적인 페미니즘을 둘러 타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면서도 작가 테일러 맥이 작품을 통해 투사하고 있는 사회 담론이 다양하게 내재되어 있다. 작가 젠더의 정체성은 극중 인물 맥스일 수 있으면서도 가부장제 질서와 전통적인 제도의 붕괴, 젠더와 퀴어의 급진적인 담론, 미국주의 사회, 기후변화와 미국의 난민 문제와 인종차별, 전쟁과 마약, 전쟁의 부조리함과 현실의 미국 사회 모순들이 맥스의 가족을 통해 투영되고 있다. 집에서 일어나는 풍경은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젠더담론이 성숙해져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도 공감하기에 충분해 보였는데, 페이지의 가정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면서도 모순된 캐릭터와 미국의 한 가정에서 발화되는 상황은 부조리 적이면서도 코미디적으로 흐르고 현실은 사실적이다.
첫 장면을 배치하는 미장센으로 집과 가족의 붕괴를 강렬하게 투사하고 있다. 이 집을 둘러보자. 무대 전면으로 펼쳐지는 집은 난장판이다. 집, 방, 거실로 보이는 구조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뒤죽박죽이다. 마치 쓰레기 더미로 쌓여 있는 집이다. 통로는 막혀 있고 출입문 정도로 보이는 공간 정도만 유일하게 등퇴장이 가능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은 막혀 있고 한때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리모컨을 작동시킨 TV는 폐기 처분된 고물처럼 놓여있다. 소파와 창문 밑으로는 남편 아돌드가 애완견처럼 잠을 자는 박스가 놓여 있다. 아놀드는 심한 뇌졸중 영향으로 움직임이 불편하고 아이처럼 되어버렸다. 머리는 삐에로 가발에, 몸에 걸치고 있는 가운은 여성적이고 얼굴은 퀴어적인 색감으로 분장되어있다. 80, 90년대의 집을 지켜온 아놀드의 젠더경계는 모호하고 페이지가 아이작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으로 파병되어 마약 복용 혐의로 불명예제대를 하고 돌아온 미 해병대 출신의 아이작을 제외하고는 맥스, 페이지, 아놀드는 생물학적 젠더를 거세한 Ze와 히어(HIR)의 경계에 있는 극 중 인물들이다. 페이지는 거동이 불편한 아놀드를 마치 장식품의 광대나 아이처럼 대하고 아놀드의 순종적인 행동과 대화가 마치 한 가정의 익숙해진 놀이처럼 보이는 삶의 방식에서 웃음이 터지면서도 아놀드가 몸을 떨며 추위를 느껴도 페이지가 반복적으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여성 호르몬제인 에스트로겐을 믹서기로 갈아 쉐이크를 만들어 규칙적으로 먹이는 장면으로 전환될 때쯤 한 가정이 균열되어 가고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 무질서한 집으로 변해버린 집, 웃으면서도 비극적인
에어컨의 냉각 바람은 마치 페이지의 집처럼 난장판이 되어 버리고 있는 세계기후변화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구온난화 현상의 기후변화는 미래의 삶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은 남편의 폭력만큼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아놀드의 과거 폭력성이 외도가 밝혀지지 전까지 에어컨은 남편을 향한 무언의 폭력적인 행동들도 보이면서도 다층적인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1막 극초반이 흘러가면서 부조리한 상황과 성별이 전복된 캐릭터와 페이지의 행동들은 전쟁터(아프카니스탄)에서 죽은 자의 시체더미를 뒤지며 전사자의 살점을 찾아다닌 아이작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터 19금과 욕설을 날리며 뒤죽박죽된 가족의 질서는 배우들의 대사와 절묘한 타이밍의 연기 행동들이 코미디 적이면서도 부조리한 상황들로 전환된다. 무질서한 쓰레기 더미로 변해버린 집은 더 이상 전통적인 가족의 질서로 살아갈 수 없는 붕괴 되어 있는 집이다.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기 위해 에스트로겐을 과다 복용해 여성 호르몬이 높아 퀴어적으로 변해 버린 아빠의 모습과 여자 동생에서 남동생이 되어 ‘ze’와 ‘hir’로 불리길 원하는 맥스, 집의 구조와 삶의 방식을 바뀌고 가족의 결정권자가 되어 버린 페이지 사이에서 적응할 수 없는 아이작은 아빠(아놀드)와 집을 전통적인 질서로 되돌리기 위해 페이지와 팽팽한 대립을 보이면서도 시체더미를 주우면서 아프카니스탄 파병 생활에 적응하지못하고 마약으로 견뎌야 했던 아이작은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린다. 페이지의 새로운 제도와 질서로 변해 있는 집과 가족으로부터 온전한 남성의 아이작만 이탈되어 적응하지 못하고 제도와 규칙으로부터 적응할 수 없는 아이작은 페이지가 아스트로젠을 믹서기로 갈거나 남동생이 되어버린 맥스의 이야기와 아빠를 대하는 페이지의 행동을 보며 구토를 반복적으로 보인다. 여전히 아이작은 전통적인 가족과 사회를 거부할 수 없는 인물로 페이지는 아이작을 가족으로 부터 분리되어 있는 소파에서 생활하라고 한다. 작가 테일러 맥의 아프카니스탄 설정은 전쟁의 시대를 종식할 수 없는 미국 사회와 파병은 시체더미를 줍거나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며 군 생활에 적응할 수 없어 마약을 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을 조롱한다. 이성애자 백인이 성공할 수 있는 사회는 중국계 미국인 여자한테 33년간 일 해온 배관공 일자리를 뺏겼을 정도로 다양한 유색 인종들과 여자, 동성애자들이 사회를 리더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모두 ‘트렌스젠더’ 물고기, ‘HIR’로 응답하라.
페이지의 시선으로 아놀드의 시대는 “세상은 변화하는데 그걸 따라잡지 못하니까 그 압박감을 견디질 못했지. 그래서 한 일 년 전쯤에 저 인간 피가 뇌로 안가겠다고 작정을 한거야, 그래서 뇌졸중이 온 거지. (중략) 저 인간의 폭력성을 알았던 사람들은 저 인간의 역사를 동정심으로 재구성하지 않을 거라고.” 페이지가 아이작과 한데 퍼붓는 대화처럼 아놀드의 전통적인 시대는 붕괴하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되어야 하며 특정한 성별이 지배해온 사회는 맥스처럼 젠더의 경계와 역할이 파괴되고 있다. 평생 하나의 젠더로 규정당하며 살아온 페이지에게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로 분리된 신화적인 성별의 구분이 아닌 모두가 트렌스젠더 물고기로 살고 있는 젠더평등의 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지의 집은 가부장적인 젠더의 성별이 거세당해 있으며 페이지가 꿈꾸는 사회는 남성과 여성으로 살아가며 역할이 관습처럼 지배하는 제도가 아니라 페이지의 집처럼 붕괴되고 젠더의 새로운 제도로 이식되어가고 있는 급진적인 사회의 현상을 작가는 맥스와 페이지를 통해서 그리고 있다. 1막까지는 젠더담론을 한 가정이 붕괴되어 있는 현상을 통해 드러내고 맥스와 아놀드의 캐릭터와 페이지의 대사에 당황스러우면서도 2막부터 아놀드의 폭력성이 그림자인형극 놀이로 밝혀지면서 웃음은 진지함으로 전환되고 비극의 내면성으로 페이지를 마주하게 되면서 버텨온 삶에 먹먹해지고 대사처럼 우리 모두가 왜 트렌스젠더 물고기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2막부터는 젠더담론, 거친 대사, 19금들로 무대로 돌진한 1막의 분위기를 페이지의 과거와 현재의 시간으로 돌리면서 웃음은 걷히고 극은 명료해진다. 2막의 집의 전경은 아이작이 난장판이 된 집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 같은 구조의 전경으로 시작된다. 냉각 바람이 멈춘 에어컨, 말끔하게 정리된 집과 부엌들이 보이는데 1막에 무질서하게 붕괴되어 있는 집은 아이작을 통해 전통적인 질서가 재건(再建) 된 것처럼 보이면서도 집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라는 페이지 말에 아이작은 격한 반응을 보이고 두 사람의 다툼이 이어진다. 아놀드한테 남성 셔츠를 입히려는 아이작, 여성적인 나이트가운을 입히려는 페이지를 응원하는 맥스의 장면들이 이어지고 아놀드를 향해 물 스프레이를 날리고 딱밤으로 통제하며 아놀드의 남성성의 본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페이지의 행동을 볼 때마다 두 인물 사이에 웃음이 터지면서도 무너진 아놀드를 향한 연민으로 극은 웃으면서도 먹먹해지고 비극성을 들어낸다. 맥스는 똥꼬충 이야기와 익숙하지 않은 반조악기 연주하며 자신을 트랜스 매스큘린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며 트랜스섹슈얼 히어스토리안이 되고 싶어 한다.맥스의 19금의 이야기와 도발적인 섹슈얼리티를 연상하게 하는 대사들이 터질 때 쯤 관객들은 등장인물들로 분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낯선 대사들에 씩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맥스가 아놀드를 향해 주먹을 날리려고 할 때쯤 페이지와, 맥스, 아놀드의 그림자 인형극 무대로 전환된다.
맥스와 아놀드는 레인보우 판타지 모양과 영화 ‘베이비 제인’ 머리 스타일의 가발을 쓰고 아이작은 핑크 푸들의 가발을 눌러쓰고 전환되는 가족의 그림자 인형극은 마치 남편 아놀드를 향한 페이지의 복수극이다. 페이지는 맥스와, 아이작 한테 아놀드가 미용사와 바람을 피운 이야기와 남편한테 원하지도 않은 강간을 당한 이야기, 힘들었던 과거 시간 그대로 아놀드와 맥스가 조정하는 그림자인형극으로 재현된다. 아놀드는 매번 그림자 인형을 조정하면서 그의 과거 시간을, 페이지의 내면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연출은 이 장면에서 인형극 놀이와 페이지의 공간을 분리하는데 과거는 치유되거나 분리될 수 없는 페이지의 현재의 내면성을 강렬하게 들어내고 극중 인물 페이지로 분한 박명신의 절제된 연기로 송곳으로 박혀 있는 삶으로 토해내는 장면으로 객석은 침묵이 흐르고 2막 후반까지 가려지고 있던 집의 벽면은 아놀드의 폭력으로 갈라지거나 구멍이 뚫려버린 채로 흉측하게 변해 있는 장면과 페이지의 고백으로 관객은 충격을 받게 된다. 사회적 성별 여성으로 결혼해 견디고 살아온 페이지한테 전통적인 가부장제는 여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제도로 페이지와 맥스에게 성별은 she, he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엄마가 아닌 (아이, I)로 성별 중립 인칭대명사인 지[Ze]나 히어[HIR]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전히 페이지와 맥스 세상의 제도로 들어서지 못한 아지작은 에어컨을 부수고 ‘집이 되고 싶다’는 말에도 페이지는 아이작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앙상블로 웃는, 뻬에로의 비극
아이작이 집을 떠나는 사이 기저귀에 소변을 지리고 무너진 아빠(아놀드)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맥스다. 연출은 이 장면을 명확한 미장센 연출로 그려내고 있는데, 카입(이우준)음악감독이 작곡한 ‘ Hir 테마’곡이 흐르면서 장면은 절정을 향한다. 멜로디는 맥스와 아놀드의 삶이 되듯 슬프면서도 새로운 생명이 부여되는 것처럼 한 가족의 현실을 따라가며 선율의 감정은 광활하면서 두 인물의 자아를 멜로디의 선율을 그려낸다. 맥스는 아놀드의 나이트가운을 벗기고 소변을 닦아내며 옷을 갈아입히며 무너져가는 아놀드의 모습과 맥스의 장면이 교차하고 극은 맥스가 여성 옷을 개키는 것으로 끝난다. 무너져 버린 아놀드를 용서하고 삐에로 광대로 살아야 했던 뇌졸중의 아빠를 보듬는 것은 히어[HIR]로 불린 맥스다. 연극은 90년대 라이어의 원작인 한양레파토리의 <심바세매>(심야에는 바바리, 새벽에는 매리) 처럼 미국 사회의 한 가정으로 돌진하는 상황과 반전, 캐릭터들과 절묘한 대사, 행동의 타이밍으로 코미디극 같은 웃음의 산소를 공급하고 있으면서도 남편(남자)의 폭력성과 외도로 페이지 내면의 굵은 상처를 2막에서 마주할 때쯤 가족과 가정, 부계사화의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모순과 폭력성은 미래 사회를 흡수할 수 없는 구조로 지어진 전복(顚覆)되고 파괴되어야 할 집이면서도 페이지가 꿈꾸는 미래의 집은 전쟁도, 남편의 폭력도, 기후변화의 위기도, 난민 문제도 사회적인 부조리와 모순으로 균열되어가는 구조의 집이(국가)가 아니라 She나 He의 경계가 없는 평등의 퀴어들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국내 초연을 한 이번 작품에서 연출의 신호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과 배우들의 절묘한 타이밍으로 앙상블을 보여준 연기였고 아쉬운 장면도 이 장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