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보니 눈물이였네, 연극 나는 오늘 그 사람을 죽인다. 선돌극장
노작홍사용(露雀 洪思容) 창작단막극제 연극 <나는 오늘 그 사람을 죽인다>(선돌극장, 작연출, 여온)은 일제강점기 시절 토월회’를 이끌며 신극 운동을 주도했던 홍사용 선생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개최되며 올해 5회째다. 희곡으로 대상을 받은 <나는 오늘 그 사람을 죽인다>는 2인극이다. 70대 치매를 앓고 있는 극중인물 고태(이의령 분)와 동네 허름한 목욕탕을 물려받아 살아가고 있는 딸 무영(박세화 분)의 이야기다. 평범할 것 같은 목욕탕은 살인 계획이 향하는 인물이 아버지 고태라는 사실에 놀라고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무영의 복수가 어설프면서도 웃게 만든다. 두 배우의 연기로 부녀(父女)의 송곳 같은 상처의 내면들은 목욕탕 바닥을 락스 세재로 문질러도 자국을 지워낼 수 없는 묵은 때처럼, 상처를벗겨내는 고태와 무영의 대화 장면에서 부녀의 애잔한 장면들로 채워지면서도 고태의 폭력으로부터 ‘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과거 시간이 드러나면서 부터 웃으면서도 불편해지고 먹먹해지는 연극이다.
◆나는 오늘 그 사람을 죽인다
극 중 인물의 캐릭터와 두 인물이 무대로 쌓아가는 과거와 현재의 묵은 갈등은 ‘오늘 그 사람을 죽여야’ 하는 복수(復讐)의 현재 시간은 죽은 엄마와 과거 시간의 삶으로 교직(交織)되어 이야기는 흘러가고 극은 희비극으로 반전을 거듭하면서 50분을 두 배우의 연기로 끌고 간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섬뜩한 살인으로 이어질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면서도 가족의 비극을 웃음으로 치환하는 연극적인 설정과 장치에서 웃게 만든다. 포인트는 이렇다. 무영이 고태를 향해 온수와 냉수를 틀어놓고 욕탕 안에서 목을 조르고 죽음의 문턱으로 향할 때쯤 전화가 걸려 오고, 숨통이 끊어질 때쯤 과거를 회상할 만큼 번개처럼 정신이 돌아오는 식이다. 박혀 있는 아픔들로 절규해야 하는 연기에서 무영은 욕탕의 냉온(冷溫)의 비율만큼 지워지지 않는 내면의 아픔으로 돌려놓으면서도 진지한 웃음의 템포를 극의 전반으로 유지하는 몰입을 보여준다.
무영의 살인 계획은 이렇게 시작됐다. 고태는 치매에 걸렸어도 무영을 향해 ‘죽일 년 ‘하며 꼬장꼬장하다. 가부장의 폭력적인 위계는 치매를 앓고 죽음을 향해도 날이 서 있다. 목욕탕을 물려받은 무영은 목욕탕 바닥도 제대로 청소할 줄 모르는 ‘이년, 저년’이다. 딸의 이혼도 제대로 하는게 없는 저년 때문이고 목욕탕을 청소하며 고태의 날 선 꼬장꼬장함에 억눌려 살아왔다. 죽은 아내도 ‘시집올 때 논 두 마지기 밖에 해온 게 없는 여자’이다. 연극은 고태의 억압과 위계, 폭력의 사이에서 죽일 수밖에 없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가부장제의 균열을 들어내면서도 무영이 듣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는 한마디다. 무영에게 아버지 고태는 무영의 존재다. 살인 계획이 향하는 대상은 아버지가 아니라 인칭대명사인 ‘그 사람’이고 ‘고태씨’다. 그만큼 무영에게 가족과 아버지의 존재는 상처로부터 부재(不在)되어 있다.
◆락스와 죽음의 사이 ‘그 사람’
무대는 동네 허름한 목욕탕이다. 40도 이상으로 몸을 푹 담을 수 있는 타일의 형태로 된 욕탕이 보이고 좌측으로 출입문과 그 앞으로는 좌식 샤워기들이 보인다. 시간은 설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저녁쯤 일어나는 일들이다. 바닥에는 일회용 샴푸와 타올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락스 통과 대형 바닥 솔도 보인다. 위압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음향 소리가 목욕탕 공간을 망치로 탁탁치며 벽면을 울려대는 것처럼 섬뜩한 공간 분위기는 ‘오늘 그 사람을 어떻게 죽일지’ 무대는 긴장감 흐른다. 마치 누군가 망치를 들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설 것처럼 분위기를 형성하면서도 전화통과 맥주와 마른안주를 무영이 들고 들어 오면서 허름한 목욕탕 안으로 채워지는 극의 습도는 ‘어, 뭐지. 이 분위기는’ 복수극하고 대비되는 낯선 풍경으로 전환한다. 이어, 맥주와 땅콩, 오징어는 고태를 죽인 뒤 시원하게 마실 거라는 무영의 대사와 이불보에 싸서 목욕탕 내부로 고태를 끌고 들어온다. “고태씨, 어디서 뭐 훔쳐 먹었어? 다른 집 노인들은 죽을 때 되면 뼈만 앙상하다던데 어째 고태 씨는 더 찌는 것 같아?” 살인자의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악마의 소리가 아니라 투덜대는 인간의 소리로 느껴지면서 극은 공포에서 두 사람의 과거 삶을 듣게 된다.
무영은 고태를 죽인 후 치매 환자가 욕탕 물에 혼자 빠져 죽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전화통을 들고 어설픈 예행연습을 하고 고태를 향해 “들었죠. 고태씨? 나 이렇게 할 거예요. 나 잘하지. (중략) 그리고 저 맥주를 콸콸콸 먹을 거야.” 죽음의 잔치를 준비하며 그 사람을 향해 뱉어내는 어설픈 살인 설명서를 들으면서 목욕탕 복수극은 “찬물이 좋아, 더운물이 좋아”하며 온수의 온도를 직접 정하라는 마지막 배려에 키득거리는 웃음이 객석에서 쏟아진다. 의식이 돌아와 이불을 빨라는 고태의 위압적인 말에 두 발로 이불을 꾹꾹 밟아가며 묵은 때를 벗겨내면서도 꼬장꼬장한 고태가 물을 아껴 쓰라며 이년, 저년 하며 “집에서 밥하고 빨래만 하는 년이 뭐가 힘들다고 징징거려”라는 말에는 두 사람의 대화와 삶이 불편해 진다. 견디며 살아야 했던 삶의 아픔들을 두 발로 푹푹 담가내면서도 무영의 묵은 내면은 ‘미안하다’라는 한마디를 기다리는 딸의 애잔한 내면을 연기로 그려낸다.
◆살인의 방식, 유쾌한 살인 설명서
이불보에 쌓여 형체를 볼 수 없었던 고태가 깨어나면서부터 극은 반전으로 갈라진다. 기저귀를 갈아주며 무영의 살인 설명서가 행동으로 옮겨지고 관객은 목욕탕 바닥에 똥오줌을 지리는 고태를 보면서 무영의 살인은 싱겁게 끝나겠다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데, 무영의 살인 방식에 집중하게 될 때쯤 전화벨이 울리고 정상인 의식(意識)으로 돌아와 할 말 못 할 말 쏟아내는 고태의 설정으로 오늘은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살인 계획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이런 식이다. 무영은 고태를 뜨거운 온수가 넘치는 탕 속으로 밀어 넣고 목을 조르는 순간 설 연휴에도 목욕탕을 영업하는지 묻는 전화가 걸려 오고 고태는 수화기를 향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식이다.
두 번째 살인 방식은 미끄러운 목욕탕 바닥에서 스스로 죽기다. 무영은 목욕탕 바닥에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비누로 미끌미끌하게 칠하고 고태를 바닥 위로 일으켜 세운다. “ 미끌미끌한 느낌이 들 때, 그때 자빠지세요.”하는데도 멀쩡하게 타일 바닥을 걷는 고태 사이를 왕복하며 마치 컬링선수처럼 밀대 바닥 솔로 자연스럽게 넘어지질 수 있도록 하나, 둘, 하나, 둘을 외치며 죽음을 유도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면서 극은 여전히‘ 그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오늘’이 된다. 무영의 어설픈 살인 계획은 웃음을 장전하면서도 두 사람과 실종(죽음)된 엄마의 과거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누군가의 자전적 이야기처럼 화해와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고태는 죽은 아내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폭력으로 대하던 과거를 기억하는 무영은 엄마의 혼령이 무의식으로 투영되어 죽은 엄마의 내면의 삶으로 동일화된다. 폭력은 고태의 과거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억압적인 가정환경과 폭력을 받아온 사실을 고백하면서 고태도, 딸 무영이도, 죽은 엄마도 락스로 목욕탕 바닥을 닦아내도 지워낼 수 없는 상처로 할퀴어져 있는 불안전한 내면들로 엉켜있다. 치매에 걸려도 지워 낼 수 없는 과거 시간과 벗어날 수 없는 고태의 내면은 거세된 모성의 결핍으로 분노와 복수로 쌓여 고스란히 딸과 아내로 대물림된 사실이 밝혀질 때쯤 극은 목욕탕 온수의 열기만큼 정점을 향하게 된다.
목욕탕 바닥을 평생 문지르며 락스로 지문이 닳아버리고 고태의 폭력으로 사라진 아내의 이빨처럼 다리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으면서도 딸(무영) 때문에 견디며 살아야 했던 아내는 죽어서도 죽음의 ㄷ순간을 막아 두 사람의 화해를 시도하는 것처럼 물속으로 고태를 집어넣고 숨통을 짓누르는 순간에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마치 허름한 목욕탕을 지켜낸 엄마의 혼이 목욕탕을 배회하는 것처럼 수화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그래서일까. 마지막 장면에서는 피멍에 박혀 있는 송곳을 빼기 위해 가족들을 향해 마지막 치유를 시도한다. 고태가 스스로 머리를 목욕탕 벽면으로 처박고 숨통을 끊으려고 할 때쯤 무영은 말리고 고태 입에서 ‘미안하다’라는 말이 희미하게 터져 나온다.
무영은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걸까. “그 말은 제정신에 해야지. 멀쩡할 때 해야지! 다시 말해봐. 다시 말해보라고!!” 절규하며 무영으로 분한 박세화의 연기에서 견디어온 삶이 먹먹해 지면서도 “그래도 난 당신 죽일거야! 내년 구정에는 꼭 죽여줘요! 제사 두 번 하기 싫으니까” 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에서 눈물로, 웃음으로 극의 온도를 마지막까지 당긴다. 두 배우의 연기로 연극 <나는 오늘 그 사람을 죽인다>는 허름한 목욕탕처럼 역사 속으로 파괴되어 사라져 가는 낡은 가부장제의 모순에 돌직구를 날리면서도 폭력의 권력이 대물림되는 정치적인 은유로 환기되고 전환되고 있는 시대의 폭력과 권력, 가족의 사회적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50분 단막극이 연극적 설정으로 흐르지 않고 무영의 가족사에 공감 할 수 있었던 것은 락스로도 목욕탕 바닥 때를 지워낼 수 없는 쌓인 시간의 내면을 배우 박세화가 절제된 연기로 완충시켜 꺼내놓으면서도 몸으로 박혀버린 가슴의 절규를 연기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연기가 좋았음에도 아쉬운 것은 감정의 몰입상태가 한 발짝 더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특히 이불을 두 발로 짓누르는 장면에서는 무영의 삶이 읽히고 하나둘, 하나둘, 하며 고태 스스로 바닥에 자빠지도록 유도하는 극중장면에서는 오늘도 그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애잔함에 웃으면서도 상처가 핏물로 굳어져 버린 내면과 여전히 심리적인 억압에서 벗어날 수 없는 미세한 긴장상태의 여진을 절제된 연기로 담아냈다. 아쉬운 점은 극 중 인물과 동선보다 목욕탕 공간이 크고, 고태는 60대 이상의 배우였으면 극은 더 선명해졌을 것이다. 삶이 아니라 연극적인 놀이로 다가오는 장면들이 많았고 이런 설정들이 극을 살려내면서도 아쉬웠다. 배역이 실제보다 연기로 감당해 낼 수 없는 캐릭터라면 극 중 인물은 현실을 베어낼 수 없는 연극이 된다. 작품을 볼 수 있게 만든 건 6할은 배우의 연기였고 4할은 작가의 이야기와 연출이 장면으로 배치한 무대였다. 공상집단 뚱딴지의 작, 연출을 맡고 있는 여온의 연출 작품으로는 <2021 모든건 타이밍>, <늑대가 부른다>, <조각상은 변하지 않는다>, <옥인동 부국상사> 등이 있으며 <후산부, 동구씨>, <유나를 구하라!>등을 써오고 있다. <후산부 동구씨>로 2021 대한민국 연극제 서울대회, 고마나루연극제, 거창국제 연극제 등에서 대상과 금상을 수상했다. 월드 2인극 페스티벌 <조각상은 변하지 않는다>(2021)로 연출상과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