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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Jul 29. 2019

아파트

집을 향한 사람들의 삶의 고착과 애환

초등학생이 되던 시절, 처음으로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없는 살림에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위해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댁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엄마는 할머니 댁으로 이사를 감으로써 부동산에 대한 금전적 지출을 막고 외가 살이 기간 동안 저축을 통해 '내 집 마련'이라는 원대한 꿈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직장에 다니셨고 항상 학교를 다녀오면 외할머니가 나를 마중해주셨다. 외할머니와의 삶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나의 출생 연도는 1987년, 그 시기에 준공된 오래된 아파트. 차가 많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져 지하 주차장이 없던 아파트였다. 어릴 적 기억을 회상해보아도 그 당시에는 아파트에 주차된 차를 열 손가락으로 3번 셀 정도였던 것 같다.  매미가 울던 여름밤에는 아줌마들이 평상에 모여 수다를 떨었고 해가 질 때까지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열심히 놀던 내 기억에는 정말 인정 많은 아파트였다.


IMF가 대한민국을 삼킨 1997년, 주변에 살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사를 가기 시작했다. 옆라인에 살던 의영이네 아버지는 명예퇴직을 하셨고 의영이네 집에 놀러 가면 의영이 어머님께서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 한없이 우셨다. 동네에서 함께 놀며 자란 친구들이 이사를 간다는 것은 내게 큰 충격이었고 상실감이 컸다. 나는 의영이 어머님이 이사를 가기 싫어 우시는 걸로만 알았다. 의영이가 이사 가던 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나는 의영이가 좋아하던 나의 야구공을 선물해줬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바로 옆 동에 살고 계셨다. 위층의 부부가 부부싸움을 해서 고성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둥 저질스러운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둥 그래서 이사를 했다며 내가 사는 아파트를 입에 침이 튀기도록 욕을 했다.  아파트의 가격은 서서히 내려갔고 장기적으로 투자가치가 없어졌다.




이미 젊은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아파트가 먹은 나이만큼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입주자들의 나이도 제법 많았다. 소비가 많은 젊은 세대가 없어졌고 지역상권은 침체되었다. 비교적 소득 수준이 낮은 세대가 이사를 오기 시작했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입주자가 늘었다.


성인이 되어 결혼을 앞둔 2013년, 우리는 그 아파트를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신도시인 세종시로 이사를 했고 2016년에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세종시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다. 이사를 하고 보니 내 삶에 사소한 변화가 생겼고 첨단 기능이 내재된 신축 아파트의 시설이 너무 놀라웠다.


주차공간이 너무 협소해 아침 출근길이면 이중 주차된 차량을 밀고 빼고 하던 나는 이제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여유로운 지하주차장에 고민 없이 차를 주차할 수 있었고 거실에서 설치된 컨트롤러를 통해 현관에 나가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를 올라오게끔 할 수 있었다. 아파트 1층에는 더 이상 차가 돌아다니지 않았고 인조적이지만 예쁘게 꾸며진 조경시설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아파트 초입에 대문짝만 하게 걸린 현수막에는 '품격 있는 주민이 사는 아파트' '세종시 살기 좋은 아파트 지정을 경축합니다!'와 같은 문구가 자주 적혔다.


환경이 변하면서 마치 사람이 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고급빌라에 거주하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현수막에 적혀있는 문구를 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고품격 아파트에 거주하는 품격 있는 시민이 된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과거에 살던 아파트를 끝없이 비난했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의 얼굴을 회상했다. 그리고 의영이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내가 주었던 야구공은 잘 보관하고 있는지 꽤나 많이 보고 싶어 졌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다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술자리에서는 주변에 아는 지인들 사례를 꼭 하나씩 들먹이며 '몇억을 벌었네, 몇억이 올랐네' 아우성이다.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기세력과 성급히 오른 집값을 때려잡겠다며 온갖 규제와 정책을 발표했다. 임대사업자와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다 같이 망하자는 것이냐며 정부의 정책과 규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서른세 살, 두 아들의 아빠가 된 나는 인터넷을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로 분양받아 입주할 아파트의 시세를 점검하고 유튜브를 통해 '부동산 투자 잘하는 법'을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거주환경과 조건은 과거에 비해 너무나 좋아졌고 달라졌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오래된 아파트에서 느꼈던 교감과 감정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이웃은 남이 되어버렸고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인사를 하지 않는다. 워터파크처럼 기갈나게 지어진 놀이터는 자랑의 대상이지 학원가를 뺑뺑 도는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옆집에 이웃이 이사를 간 건지 새로 이사를 온 것인지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어릴 적 집이었고 안식처였던 아파트는 성인이 된 내게  집이 아니다. 내가 살던 집과 지금 내가 사는 집은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어떤 집에 내게 옳고 바람직한지 아직 난 구분할 수가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인터넷 뉴스 경제란에는 ‘집값 폭등’이라는 단어가 무수하게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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