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신도시 21화

빈소

by 안개홍


오후 9시 20분.

으뜸마을 1003동 904호, 현우의집.


현우는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키패드에 손을 대려다 멈췄다.

다시 대려다 또 멈췄다.


안에서 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왔어?"


현우의 손이 떨렸다.

삐빅, 삐빅.

키패드 소리가 네 번 울렸다.

문이 열렸다.


"아빠!"


은서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우를 보는 은서의 얼굴이 환했다.


현우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현관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바짝 마른 채로 떨리고 있었다.


"아빠?"


은서가 다가왔다.

현우의 이상한 모습을 알아챘다.


한 시간 전,

현우는 경찰에게 전화를 받았다.


"김현우 씨죠?

세종경찰서입니다.

부인 최소영 씨와 관련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바로 오송역으로 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슨... 일이..."


"전화로 말씀드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빨리 와주시기 바랍니다."


현우는 오송역으로 달려갔다.


심란한 빨강파랑 불빛.

출입통제선.

흰 천으로 덮인 무언가.


"신원 확인 부탁드립니다."


경찰이 천을 살짝 걷었다.


소영이었다.


현우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윽..."


신음 같은 소리만 나왔다.

경찰의 설명이 귓속으로 들어왔다.


KTX 열차, 투신, 사망.

그 단어들이 얼음 조각처럼

문장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빠, 왜 그래?"


은서의 목소리에 현우가 정신을 차렸다.


현우는 한참을 현관에 서 있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곱 살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은서야, 이리 와봐."


현우가 거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앉았다.

은서를 무릎 위에 앉혔다.


"은서야..."


그 한마디를 꺼내는데

목에서 신음 같은 소리가 나왔다.


"엄마가..."

은서가 현우를 빤히 쳐다봤다.


"병원 갔어?"

"엄마가... 하늘나라 가셨어."


은서는 잠시 침묵했다.

일곱 살 아이가 '하늘나라'라는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언제 와?"


현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은서야... 엄마는... 이제 못 와."

"왜? 아빠가 데려오면 되잖아."

"못 와... 영영 못 와..."


현우의 목소리가 떨렸다.

온몸이 떨렸다.


그제야 은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아빠의 얼굴을 보니 무서웠다.


"아빠... 왜 그래..."


은서의 눈에서도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몰랐지만 눈물이 났다.


"으으윽..."


현우는 은서를 꽉 안았다.

삼키고 삼켰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은서도 아빠 품에서 울기 시작했다.

아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빠... 내가...학교에서...

엄마한테 보기 싫다고 해서...

엄마가 안 오는 거야?"


은서는 아빠 품에서 빠져나와

엄마 방으로 뛰어갔다.


"은서야..."


은서는 이미 침대 위에 올라가

엄마 베개를 안고 있었다.


은서가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의 샴푸 향기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아까는... 심술났어.

엄마를 자주 못 보니까...

일기장에도 썼어...

나 엄마 정말 사랑하는데

아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못했어..."


현우가 은서를 꽉 안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현우와 은서는

소영이가 머물었던 침대에서

한없이 울었다.


창밖 으뜸마을 불빛이 켜졌다.

사람 사는 동네의 평범한 불빛.


그러나, 현우의 집은

더 깊어지고 어두워졌다.




같은 시간.

으뜸마을 1003동 602호

우석과 서연의 집.


서연은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뉴스를 봤다.

소영에게 전화까지 했다.


"여보세요, 경찰입니다.

혹시 최소영 씨와 아는 분이신가요?"


최소영.

오랫동안 의지하던 동네 친구.

그리고 은서 엄마.

그녀가 죽었다.


"왜... 왜..."


서연의 입에서

끊임없이 같은 말이 새어나왔다.


현관문이 열리고 우석이 들어왔다.

눈이 퉁퉁 부은 서연을 바라봤다.


"여보... 소영이가 죽었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서연의 목소리가 완전히 부서졌다.


우석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가방이 손에서 미끄러져 툭 떨어졌다.

그 둔탁한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

귀에서 '삐ㅡ' 하는 이명 소리만 들렸다.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뭐... 라고...?"


우석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오송역에서... 투신했대..."


"안 돼... 안 돼... 안 돼..."


같은 말을 반복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안개홍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타인과 나의 삶을 기록하는 언어의 조각들을 수집합니다. 수집한 조각들로 새로운 기록을 글로 만들어냅니다.

8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2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