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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Aug 27. 2019

물가가 오른 게 아니다.

금으로 보는 화폐 가치의 역사

"감자값이 금값이네."


어머니가 반찬으로 내어주신 감자볶음을 먹는 내게 말했다. 마트를 자주 방문하지 않는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말없이 감자볶음을 주워 먹었다. 그러다 문득 감자 가격이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었다.


"대체 감자가 얼만데요?"

"만원"

"정말? 말도 안 돼."


해마다 오르는 물가에 대해 사람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음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마트를 방문해보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비재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몸소 실감한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은 아니지만 변동 없는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치솟는 물가를 바라보면 하염없이 깊은 한숨이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잘 생각해봐야 한다. 과연 물가만 오르는 것인지, 왜 이렇게 가격이 폭등하는 것인지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물가가 오른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한 가지 역사적 사실로 대변하고자 한다.


먼저, 금본위제도에 대해 알아보자. 금본위제도란 화폐단위의 가치와 금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를 유지하는 본위 제도를 말한다. 19세기 무렵, 영국에서 금의 분실사고와 소실이 발생하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 '화폐'였다. 화폐 1장의 가격에 금 몇 그램의 가격을 등가교환의 형태로 지정하였고 사람들은 더 이상 금을 가지고 다닐 필요 없이 금의 가치가 반영된 화폐로 물물교환을 했다.


금본위제도를 통해 화폐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5천 년이 넘는 인류 역사 중 큰 변동량이 없다면 금본위제도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사건이 발생한다. 금본위제도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에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승리를 위해 국가가 보유한 금의 보유량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과거에는 금본위제도를 창조한 영국의 유통화폐인 '파운드'가 기축통화였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은 식민지 개척, 인도와 아프리카 점령,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 엄청난 노동력과 자산을 취득하면서 다른 나라보다 현저하게 많은 양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신 있게 자국의 화폐를 세계에 유통시켰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유럽을 강타하며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은 유럽 국가에 자금과 물자를 조달하며 돈을 벌었고 막대한 양의 금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유럽 국가는 일정량의 금으로 교환이 가능한 미국의 달러를 보증수표로 보유하고 있었다.


1960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을 겪었던 유럽 국가의 국민들은 전쟁이 발생해 위기가 도래할 시, 금의 가치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일찍감치 경험했다. 금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에 통화되는 금의 가격과 미국에서 통화되는 금의 가격 차이가 30%에 육박했다. 유럽에는 금 투기가 성행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금치기(?)'가 유행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유럽 국가는 막대한 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이 금을 담보로 보증한 '달러'만큼 실제로 미국이 금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1971년 프랑스 '샤를 드 골' 대통령은 미국에 프랑스가 보유한 달러만큼 금으로 바꾸어줄 것을 요청했고 프랑스를 필두로 다른 유럽 국가들도 앞다퉈 미국에 다시 금으로 돌려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금의 요구에 미국은 위협을 느꼈다. 실제로 그들이 바꿔준 금의 보유량보다 더 많은 달러를 발행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달러 발행을 통해 자국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경제적 성장을 이룩했기에 실제로 유럽 국가들이 요구한 양만큼의 금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태환을 금지하게 된다. 이제 '달러'라는 화폐는 더 이상 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오로지 미국이라는 나라 보증하는 '신용화폐'에 불과했다.


이미 엄청난 자본적 축적을 통해 유일무이한 강대국이 되어버린 미국에 유럽은 더 이상 반격할 수 없었다. 달러는 금의 가치를 보장해주는 화폐가 아니었고 미국이란 나라의 '신용'이라는 말장난에 불과한 도적질이었지만 유럽 국가는 이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신용화폐가 되어버린 미국의 달러에는 금이 빠지면서 다른 가치가 담기기 시작했다. 미국 국민들의 피와 땀이 서린 노동력, 그 힘을 통해 생산된 제품, 국민의 생산량을 수치화한 GDP, 국민이 소비하는 소비력과 수출력 같은 가치가 나라의 화폐에 담기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제 국민들의 피와 땀, 눈물을 담보로 엄청난 양의 달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시중에 통화되는 달러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했고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의 위협에 의해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가치가 현저히 하락한 화폐를 보유하는 것보다 실물가치가 보존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자산을 지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가치가 보존되는 '금'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금을 사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1980년대 금값은 비정상적으로 올랐다. 반면 달러의 가치는 미친 듯이 하락했다. 휴지조각에 다름없을 정도로 달러 가치는 폭락했고 미국의 신용과 신뢰는 무너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신임 총재였던 '폴 보커'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전례 없던 금리를 20%까지 대폭 올려버린 것이다. 금리가 올라버리자 대출과 투자가 점차 주춤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금을 사는 대신 성실하게 은행에 가서 예금을 넣기 시작했다.


경제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도 잡혔고 신용을 담보한 달러의 가치도 안정화되었다. 신용을 회복한 달러는 전 세계의 기축통화가 되었고 현재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사실이 숨어있다.


화폐의 가치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불안한 상태다. 최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통해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고 있는 판세다.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자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금리를 인하했고 은행의 대출한도는 늘어났다. 화폐를 마구 찍어내서 화폐에 깃든 신용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영원한 가치를 보존할 것 같은 '금'은 다시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다시 한번 묻도록 하겠다.


지금 물가가 오른 것인가 ?

아니면 화폐 가치가 하락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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