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인간 Nov 13. 2019

프리솔로

도전을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 일


몇 달 전에 티브이에서 방영해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제목은 '프리솔로'. 프리솔로는 '인공적인 보조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육체적 능력만으로 암벽을 오르는 일'을 말한다. 알렉스 호놀드라는 걸출한 암벽가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암벽 등반을 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작품이다.


그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는 해발 914m '엘 케피탄'이라는 거대한 암벽이 있다.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길. 그 길에 도전하는 알렉스 호놀드의 이야기를 담았다. 물론, 영화에서는 알렉스 호놀드가 주야장천 암벽만 타는 내용이 들어가 있지는 않다. 왜 암벽을 타는지, 암벽을 처음 잡을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장엄한 자연을 접했을 때 무슨 느낌이 드는지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들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수많은 암벽 등반가들이 프리솔로에 도전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엘 케피탄을 점령하기 몇 달 전에는 가장 친했던 친구이자 또 다른 암벽가인 '율리 스택'의 사망 소식도 듣게 된다. 그러한 연유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그의 동료는 지금까지 달성한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냐며 그의 도전을 말린다. 그의 여자 친구는 그가 도전하는 날이면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고 도전한다. 암벽을 잡은 그는 거침이 없다.


가차 없는 자연이 주는 경외심. 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도전성. 죽음의 경계 앞에서 내면의 두려움을 걷어내고 엄습해오는 공포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이 오고 가는 그 찰나의 순간들이 아슬아슬하게 화면에 비칠 때면 심장이 쫄깃해지면서 손에 땀이 잔뜩 흘렀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스텝들도 그가 등반을 결정하는 날에 새벽같이 촬영장비를 챙겨서 그와 함께 등반한다. 소름이 돋았던 사실은 그 스텝들이 촬영을 시작하면, 암벽가가 실수로 떨어져 죽더라도 현장에서 그것을 그대로 촬영하고 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렉스만큼이나 그들도 긴장한 모습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났다.


바둑의 복기를 시작하듯이 알렉스는 암벽 등반 전에 머릿속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암벽에 오르기 전,  잔뜩 초크가루를 묻힌 채, 맨손에 느껴지는 까칠한 돌 표면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그렇게 조용하게, 묵언수행을 하듯이 등반을 시작한다.


그는 마침내 '엘 케피탄'을 점령한다. 정상에 오른 그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저 멀리 펼쳐진 광경들을 감상할 뿐이었다. 도전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일. 알렉스 호놀드는 그것이 바로 그가 끊임없이 프리솔로를 도전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다큐멘터리 말미에서 촬영 스텝이 그에게 다른 도전을 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아마도, 어쩌면'이라고 얼버무린다.


'죽느냐 사느냐.'


삶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결론이자 모든 인간을 숙연해지게 만드는 갈레길. B와 D의 사이에는 C가 있다. Birth와 Death의 사이에 있는 Choice, 바로 선택. 알렉스는 그 앞에서 단호하게 도전을 선택했다. 나라면 과연 이런 도전을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의 도전정신에 자연에게 느끼는 것보다 더 큰 경외심을 느끼면서 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과연 도전적인 삶을 살아본 적 있는가,

도전을 통해 스스로 얼마큼의 정체성을 찾았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욜로족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