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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인간 Dec 27. 2019

제7회 출간 프로젝트 낙선

그래도 기대를 버리지 못했나보다

우연히 브런치를 접하고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타이틀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 '작가'란 단어가 얼마나 고상하고 아름다우랴. 혼자서 웅크려 써재꼈던 낙서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직업. 잔혹하게 말살 당했고 숨겨졌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배설할 수 있는 공간. 더없이 행복했다.


그러던 중에 제7회 출간 프로젝트가 다가왔다. 대학교 합격통보보다 더 두근거렸던 날. 잔뜩 흥분해서 얼굴이 새빨게진 채로 퇴근을 하자마자 후다닥 집에 있는 개인 서재로 향하던 날들이었다. 어떤 주제로 어떻게 글을 쓸까, 하염없이 부족한 어휘력과 표현력은 어떻게 메워볼까, 있는 그대로가 좋겠다 싶어서 그동안 나의 삶을 채워갔던 노래 리스트를 추려서 목록으로 작성해보았다.


사실, 그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과거와의 접점을 마련해 준 노래를 듣는 것도 행복했고 그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올라 피식하며 혼자 웃기도 했으니까. 이 모든 행위의 원인은 출간 프로젝트였다. 난 10월 말 부터 정신없이 시간을 팔아가며 글을 써재겼다. 새벽 4시가 되고 아침 7시에 출근을 해야함에도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출간 프로젝트가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줄 유일무이한 기회라고 여겼으니까.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잔뜩한 기대감으로 나의 포부를 부풀리기도 했다. 출간 프로젝트에 당선되면 지금의 모습은 살이 쪄서 못생기게 나오지 않을까. 어떤 옷을 입어야 작가로서 면모가 드러날 수 있을까. 500만원 상금을 받으면 명품백과 옷을 사주겠다고 김칫국을 시원하게 말아먹기도 했다. 침을 튀겨가며 자신있게 말을 하는 내게 아내는 그 어떤 답변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멋쩍게 웃었다. 되면 정말 좋겠다고. 그 말만 반복했다.


오늘은 2019년 12월 27일. 허풍이 잔뜩 들어있던 내모습은 이내 쪼그라들었다. 확신에 찬 말투로 와이프에게 명품백을 선사하겠다던 약속은 허공에 흩날려 사라질 것 같다. 아무래도 난 낙선이 확정된 듯하다. 12월 30일 출간 프로젝트 선정 발표날이어서 아직 연락이 오지 않았을 뿐이라며 나를 다그쳤지만. 난 마음으로 알고 있다. 내가 떨어진 것을.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출간작품으로 선정이 되었더라면 지금쯤 출판사의 사전 연락을 받고 인터뷰를 끝냈을 것이다. 출간을 위해 사전에 작품이 노출된 적은 없었는지 글의 편집의 방향성은 좀 수정할 수 있는지, 글의 분량 조절 등과 같은 갖가지 필요한 협의를 모두 마쳤을 것이다. 


나는 낙선이 확실하다. 부푼 기대감에 2주일 이상 밤낮없이 글을 썼던 시간이 갑작스레 애달퍼졌다. 그보다 아내에게 호언장담하며 호기를 부렸던 내모습이 너무 창피해졌다. 사실 당선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탑골공원 메들리'라는 소재와 기획력이 좋아 얼마든지 좋은 편집장과 출판사를 만난다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내게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공모전 응시 후,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것은 시크해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판단과 만들어진 이미지가 문득 우스워졌다. 한마디로 쪽팔림. 시크는 커녕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 내 글로 인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자괴감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덜 비참해지는 모습이기에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다신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으니까.


덕분에 깨우친 교훈도 있다. 남을 의식하며 잘보이기 위한 글 보다는 스스로 솔직한 글을 쓰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글이 흐려졌던 것은 사실이니까. 인위적이지 않고 때묻지 않은 간혹 거칠더라도 솔직한. 그런 글을 쓸 것이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인위적임을 버리기 위해 당분간 퇴고도 안할 것이다.)



보기좋게 낙선하고 2020년을 앞둔 오늘. 

낙선을 확신했겠지만 의기소침할까봐 일부로 몇마디 하지 않았던 아내를 위해

퇴근길에 맥주 두잔과 치킨을 손에 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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